한진해운 자율협약 종료 여부를 결정하는 채권단 회의를 앞둔 지난 29일 채권단의 움직임은 미묘했다. 한진해운 자구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산업은행의 입장은 확고했으나 ‘물류 대란’ 등을 의식해 정부가 결국 추가 지원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도 상존했다.
산업은행 다음으로 한진해운 채권이 많은 KEB하나은행은 추가 지원과 연계된 조건을 만드는 등 애매한 자세를 취했다. 이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중지가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했다.
하지만 30일 오전 채권단의 입장은 명확해졌다. 전날 밤에 한진해운에 대한 결정을 채권단 뜻에 맡기는 것과 관련, 당국 최고위층의 ‘사인’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민영화를 앞둔 우리은행과 적자에 허덕이는 농협은행은 추가 지원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조건부 동의 등을 만지작거리던 KEB하나은행의 기류도 급변했다. 오전11시 산은 회의 이전에 이미 채권단은 한진해운 자율협약을 종료하기로 뜻을 모았다.
채권단이 국내 1위 컨테이너 선사의 몰락이라는 강수를 둔 배경은 일차적으로 자금조달 방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나 한진해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한몫했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추가 지원을 놓고 협회를 통해 채권단 탓만 하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한진해운과 거래 관계를 같이 하기 힘들다는 데 채권단의 입장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사태로 상처를 깊게 입은 금융당국도 한진해운 문제에서는 손을 뗐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 살리기’가 검찰 수사 등으로 가뜩이나 후폭풍을 맞고 있는 마당에 한진해운까지 개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금융당국 구조조정 라인에서는 일찌감치 ‘한진해운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현대상선과 달리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았던 한진해운 측에 대한 당국 내부의 문제의식도 상당했다.
해양수산부 등 주무부처가 한진해운을 살리겠다고 막판에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한진해운이 가져온 자구안이 너무나 부족해 추가 지원을 할 명분 확보가 어려웠다. 부족 자금 규모가 5,000억~8,000억원에 달했다. 앞서 구조조정을 진행한 현대상선이 1조2,000억원 규모의 현대증권 매각 등 자구노력으로 필요한 유동성을 자체 확보한 마당에 한진해운에만 과도한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날 산은에서 진행된 채권단 회의는 30분 만에 종료됐다. 산은 실무자는 “유류비 등 한진해운의 상거래 채권 연체 규모가 현재 6,500억원인데 신규 자금 6,000억원을 투입해도 연체 정리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순간 침묵했고 추가 지원 불가 결정에는 한 치의 이견도 없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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