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공수처가 무소불위의 검찰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며, 권력 기관 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듬해 1월 김진욱 초대 처장이 취임하며 공수처가 공식 출범했다. 고위 공직자와 검찰의 부패에 질릴 대로 질린 만큼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는, 문 전 대통령 말처럼 그런 수사 기관이 탄생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내년 출범 5주년을 맞는 공수처의 현주소는 처참하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1일 피의자 신분으로 채 상병 특검에 출석해 13시간 조사를 받았다. 혐의가 가볍지 않다. 공수처의 1호 척결 대상이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다. 오 처장은 송창진 공수처 전 부장검사의 위증 혐의를 인지하고도 이를 관련 법에 따라 대검에 통보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 간부였던 송 전 부장검사는 국회 위증 혐의와 동시에 채 상병 사망 사건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외압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고위 공직자를 성역 없이 수사한다’는 공수처의 존재의 이유를 통째로 흔드는 중대 사건이다.
비단 이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공수처는 지난 5년간 776억 원의 예산을 쓰고 기소는 6건에 그치는 역대급 비효율성을 보여줬다. 대법원까지 간 사건이 3건인데, 김형준 전 검사의 ‘스폰서 뇌물수수 의혹’과 손준성 전 검사장의 ‘고발 사주 의혹’ 2건은 무죄로 확정됐다. ‘공수처의 명운이 달렸다’고 평가받던 사건들이다. 지난해 계엄 당시에는 경찰에 맡겨야 할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를 무리하게 가져갔다가 체포영장 집행도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쿠팡 수사 외압 의혹’도 공수처 수사 대상인 검사의 비위와 직결된 문제인데 상설 특검이 수사를 맡기로 했다. 이쯤 되면 이재명 정부에서도 공수처 패싱은 공식화됐다.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시작부터 구조적 결함이 적지 않았다. 충분한 인력도, 수사력도, 조직력도 없는 3무(無) 조직으로 출범했다. 과거 전직 대통령 수사 당시에는 수십 명의 검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에 반해 공수처는 검사 총원이 25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구인난에 검사 자격 요건이 변호사 경력 10년→7년→ 5년까지 낮아졌다. 검사나 수사관이 되더라도 3회 연임(총 12년)만 가능하다. 평생 직장이 되기 어렵다 보니 우수한 인적 자원이 모일 리 없었다. 조직력의 한계가 뚜렷해 범죄 정보가 수집되지 않고, 권력 수사의 핵심인 ‘인지 수사’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어설픈 공수처 탄생을 주도한 정치권은 사후 관리도 하지 않았다. 인력난과 전문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법 개정은 대부분 정쟁 속에 계류되거나 무산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칠삭둥이도 아니고 완전히 장애를 가진 상태로 태어나게 만든 꼴”이라며 “이미 실패한 건데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해체도 못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수처의 비극이 공수처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출범할 중대범죄수사청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공수처 설립 때처럼 반(反)검찰이란 정치 논리가 수사기관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검찰의 수사력을 보전할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공수처는 조직 안에 검사가 있었고, 조직 밖에는 검찰이라는 대안도 있었다. 하지만 중수청은 검찰이 사라진 세상에서 검사 없이 자립해야 하는 수사 기관이다.
형사 사법 체계 개편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디테일은 수십 배로 촘촘해야 한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경찰만으로 중대 범죄 수사를 전담할 기관을 꾸리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유능한 검사를 데려오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할 조직을 설계해야 한다. 검찰에 대한 적개심, 개혁의 속도에 집착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수사를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법조계 원로들의 고언을 새겨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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