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증권사 리포트입니다. 기업 가치를 분석해 투자자들이 올바른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일반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언론사 기자들도 저를 열심히 읽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그에 걸맞게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연초 이후 주가가 500% 가까이 오른 컴투스와 관련된 리포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나온 컴투스 리포트는 128개나 되지만 내용은 단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게임 '낚시의 신'과 '서머너즈워'의 글로벌 흥행, 게임빌과의 통합 시너지. 이 간략한 투자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연초부터 100개 넘는 리포트가 나온 이유는 뭘까요. 주가가 올라 목표주가를 자꾸 뛰어넘으니 분석은 없이 목표주가만 바꾼 리포트를 낸 겁니다.
최근 IR 담당자가 귀띔한 실적을 미리 기관투자가에 알려주다 적발된 'CJ E&M 사태'는 애널리스트가 기업분석 대신 IR 담당자와 펀드매니저 사이에서 숫자를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예전에 애널리스트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제품 생산량을 추정하고 글로벌 동향, 시장 상황을 점검해 실적을 예측했습니다. 설령 예측한 실적이 틀렸더라도 분석방법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요즘 애널리스트는 IR 담당자와 술자리에서 친해진 다음 귀동냥으로 실적 수치를 얻어 저를 만듭니다. 받아쓰기, 베껴 쓰기가 일반화된 현재의 리서치 풍토에서는 분석력보다 취재력이 우선입니다.
물론 저를 만드는 애널리스트도 할 말은 있습니다. 밤낮없이 모델을 만들어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보다 IR 담당자 혹은 펀드매니저에게 잘 보여 실적 수치를 잘 얻어내는 애널리스트가 더 인정받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겁니다. 1년 사이 4,000명 가까운 증권사 동료들이 옷을 벗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라고 자신의 소신과 철학만 지키기는 힘들겠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그런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애널리스트의 존재의미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여러분, 증권사 리포트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애널리스트 여러분, 신뢰회복을 위해 저를 제대로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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