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 지멘스 Pictures of the Future
지난 2007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발표한 4차 보고서에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강력한 경고가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인 1800년대 280ppm에 불과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5년 379ppm으로 35%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50년에는 550ppm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 온도는 0.74도 상승했으며 이번 세기 안에 1.8~4.0도 가량 더 상승할 수 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인류는 머지않아 크나큰 위기를 맞게 된다. 2050년에는 20~30%의 생물종이 사라지게 되며 10억~20억명이 물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그리고 1억명 이상은 식량 부족에 의한 굶주림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해야 하지만 이것이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과 직결돼 있어 쉽지 않다.
이에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방안이 하나 있다. 바로 이산화탄소의 재활용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뿜어내거나 땅속에 묻는 대신 인 간에게 유용한 자원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태다.
빌딩 외벽이 태양광 발전소
"지구상의 모든 건물은 나무가 될 수 있다." 세계적 전기·전자기업 지멘스의 빌딩자동화사업부 오스만 아메드 박사는 '빌딩을 나무로(Building as a tree)' 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광합성의 원리를 빌딩 코팅에 적용하면 빌딩이 이산화탄소를 메탄올과 같은 탄소 화합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일종의 '인조 광합성' 인 셈이다.
아메드 박사는 빌딩의 코팅에 나노 단위의 색소입자를 포함시켜 햇빛을 흡수하도록 하고 거기에 이산화티탄(TiO₂)을 첨가하여 흡수한 햇빛을 전기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태양 에너지를 자원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산화티탄은 자외선을 받으면 태양전지처럼 음(-)전기를 가진 전자와 양(+)전기를 가진 정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메드 박사는 "건물 코팅의 색상은 식물의 잎과 같은 녹색도 되고 오렌지, 핑크, 회색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확보된 태양 에너지는 이산화탄소를 메탄올 등의 연료로 변환하는 데 사용되며 이 연료는 빌딩 내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파이프라인을 거쳐 저장탱크로 이동된다. 이는 건물의 난방 및 전기 에너지로 직접 사용할 수도, 에너지가 필요한 다른 곳으로 수송할 수도 있다.
아메드 박사는 무엇보다 이 기술의 막대한 잠재력을 강조한다. 그는 "미국의 건물 위로 비치는 태양에너지의 25%만 이용해도 미국에서 배출되는 상당량의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비전에 불과하다.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이미 존재하지만 그 에너지변환 효율이 최대 10% 수준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물론 최근 미국에서 이산화티탄 나노막대를 활용, 모든 각도의 햇빛을 96.21%까지 흡수할 수 있는 태양전지판 코팅 소재가 개발되기는 했지만 이 소재가 실제 상용화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햇빛을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메탄올과 산소로 변환하는 기술도 문제다. 이 부분의 기술력은 아직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화학반응을 적절하고 안전하게 촉진시키는 촉매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조류(藻類) 이용한 바이오연료
독일연방교육연구부(BMBF)는 향후 5년간 이산화탄소 재활용 연구에 1억 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독일에서는 이산화탄소 재활용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는 워크숍이 개최됐다.
이때 거론된 것이 조류(藻類)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의 탄소원자를 이용, 새로운 바이오매스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먹이로 삼아 바이오매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은 육지 식물에 비해 효율성이 5~10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생산된 바이오매스는 바이 오가스,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 바이오 플라스틱 등의 제조에 쓰일 수 있다. 조류는 특히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 제공되면 사막을 포함한 어느 곳에서도 성장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는 산업폐수를 성장 영양분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 경제성도 탁월하다.
그런데 이번 워크숍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100㎿급 석탄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조류를 통해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축구장 7,000개 넓이의 조류농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진 것.
실제로 독일 쾰른 외곽의 니더라우 젬 석탄발전소에 마련된 600㎡의 조류 시범시설이 1년간 처리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이 발전소가 단 15초 동안 배출하는 양보다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류 스스로 발전소의 배출가스 속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여러 연구자들이 이러한 과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조류에게 유입되는 빛의 양을 늘리는 기술을 비롯해 인산염, 질소산화물 등의 조류 영양물질을 재활용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지멘스의 기업기술팀 연구자들은 조류를 쉽게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조류 속에 자철석 입자를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배양 탱크에서 물을 빼내지 않은 채 자석을 이용해 조류만 걸러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만큼 물 손실이 최소화돼 건조지역에서의 조류 생산이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메탄올 등 산업용 연료로 전환
이산화탄소의 재활용에는 화학적 힘을 빌려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사실 지난 수십 년간 이산화탄소는 이미 화학산업에서 중요한 탄소 공급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일례로 이산화탄소는 유기 화합물인 요소 등의 생산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요소는 비료나 인조수지의 원료가 된다. 또 아스피린에 들어있는 살리실산도 이산화탄소의 도움으로 만들어진다.
어쨌든 이산화탄소를 화학물질로 재활용하려면 처리효율이 높고 생성된 화합물질의 수요 및 활용도가 커야 한다. 이에 기존 공정기술에 접목하기 쉽고 화학산업 전반에 널리 이용되는 메탄올, 탄화수소 등 기초 물질로 전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특히 메탄올로의 전환은 이산화탄소 재활용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메탄올은 이미 단독적으로 또는 휘발유와 혼합하여 내연 기관용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화학공업의 기초원료로서도 용처가 매우 넓다.
기존의 메탄올은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합성가스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가지고도 생산 가능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소의 공급원이다. 오늘날처럼 천연가스나 석유에서 수소를 추출한다면 환경에 주는 피해가 이익보다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자들은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이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얻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상용화된다면 수소생산 설비 옆에서 조류를 키워 이산화탄소를 메탄 및 메탄올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수소는 수소자동차, 연료전지 등의 연료로 직접 사용할 수도 있다.
광물 탄산화 기술로 탄산염 생산
광물 탄산화 기술은 이산화탄소 재활 용 기법 중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칼슘이나 마그네슘처럼 양이온을 포함하는 암석, 광물, 산업폐기물 등과 반응시켜 고체 상태의 탄산염 광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생성된 탄산염은 고가의 건축재로 활용 가능해 경제적 효과가 크다. 생산공정 중에 나오는 부산물인 황산암모늄도 비료의 원료 등으로 쓸 수 있다. 또한 이산화탄소 처리의 신속성이 뛰어나고 다른 재처리 기술과 비교해 안정성도 높다. 광물 탄산화 기술이 이산화탄소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문제의 해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이 기술은 비용이 많이 들고 이산화탄소의 대량 처리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산 속 바위의 광물 탄산화 화학반응을 모사하기 위해서는 면적 확보를 위한 채광과 연마작업이 필요하다. 설령 이를 통해 반응을 가속화시키더라도 그 과정의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수백만 톤의 탄산염을 수송하고 저장해야 한다는 점도 극복 과제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물 탄산화 기술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한 예로 최근 영국 런던에서는 콘크리트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할 수 있는 시멘트가 개발되고 있다.
연구팀은 마그네슘 혼합물에 물을 첨가했을 때 석회석 없이 고형화 되는 시멘트를 만들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단히 굳으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마그네슘과 반응, 고정화되는 동시에 시멘트를 단단하게 만드는 탄산염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저감과 재활용이라는 관점에서 실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 한번에
이렇듯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앞서 언급한 방법들 대부분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그 실질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미국 과학자들이 만든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를 들 수 있다. 이 박테리아는 이산화탄소를 먹고 이소뷰틸알데히드를 생산한다. 이소뷰틸알데히드는 휘발유의 대체재인 이소부탄올 등의 화합물을 만드는 선구물질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은 뚜렷하다. 최근 한국남부발전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전기분해해 개미산을 추출하는 기술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개미산은 개미에서 발견된 천연물질로 생물학적인 과정을 통해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유독성 화학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섬유·가죽 염색제, 인공 감미료 및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머지않아 이산화탄소가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한 정유기업은 벌써부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이산화탄소 배기가스는 근처 온실에서 식물의 성장촉진제로 쓰이고 있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이산화탄소가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에너지원과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생각 하고 아울러 산업적 차원의 경제성을 검토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과연 어떤 기술이 환경적,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부합하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이산화탄소로부터 우리가 필요로 하는 화학제품 또는 에너지원을 얻는 기술은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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