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최근 최초의 쇄빙선을 이용해 제2의 남극기지 건설을 위한 후보지를 조사했다. 제2의 남극기지로는 테라노바 베이가 선정됐는데, 최초의 남극기지인 세종과학기지가 킹 조지 섬에 있기 때문에 이 남극기지는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대륙기지가 되는 셈이다. 자료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올해 초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이 남극지역을 탐사하고 돌아왔다. 아라온은 바다를 뜻하는 우리나라의 옛말 '아라'와 전부 또는 모두를 나타내는 관형사 '온'을 붙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쇄빙선이란 얼음이 덮여 있는 결빙해역에서 얼음을 부수며 항로를 만드는 선박을 말한다.
아라온은 남극지역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륙기지 건설을 위한 후보지를 선정하는 것과 앞으로 남극 및 북극지역의 얼음지대를 항해할 수 있는 쇄빙 능력을 테스트하는 2가지 임무를 갖고 출항했다. 아라온에는 22명의 대륙기지 후보지 조사단과 해외 전문가, 이를 취재하기 위한 언론 관계자까지 모두 83명이 탑승했다.
남극대륙은 지구상에서 눈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곳이다. 공기는 사하라 사막보다 건조하고, 지구 전체의 70%에 해당하는 물이 눈과 얼음 형태로 존재한다. 남극지역의 얼음은 빙하, 빙벽, 빙산, 빙붕, 해빙, 빙폭, 유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같은 얼음은 모두 남극대륙의 높은 산에서 아래로 흐르는 빙하의 작용에서 기인된다. 다른 대륙에서는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을 이루고, 큰 강을 만들어내지만 남극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눈과 얼음에 의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빙하의 가운데 부분은 속도가 빠르고 바깥쪽은 느리다. 그래서 바깥쪽을 따라 산에서 내려온 돌과 자갈이 퇴적물을 이룬다. 빙하가 싣고 오는 퇴적물을 모레인이라고 부르는데, 운석 연구자인 극지연구소의 이종익 박사는 "산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모레인 가운데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남극지역에는 얼음과 얼음 사이에 깊은 틈이 있는데, 이를 크레바스라고 한다. 크레바스 또한 빙하의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속도가 느린 바깥쪽 빙하는 가운데 빙하를 따라가지 못하고 벌어지는데, 이때 틈이 생긴다. 가래떡을 잡아당기면 처음에는 늘어나다가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 하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번 크레바스가 생기면 그 틈은 점점 벌어진다. 그래서 남극대륙의 해안가에는 틈이 벌어진 얼음 덩어리들이 많다. 빙하의 끝단은 땅이나 바다 위에 떠 있다. 여름이 되면 녹아 얇아지면서 바깥쪽으로 퍼진다.
빙하가 얇아진 상태에서 기온이 내려가면 딱딱해지면 서 부력이 증가, 떨어져나간다. 테라노바 베이에 흩어진 유빙들은 바로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다. 절벽에는 돌들이 있고 그 사이 움푹한 곳을 빙하가 내려오는데, 이를 테일러스라고 부른다.
펭귄과 해표 등 남극의 동식물
남극대륙에서 땅이 드러난 지역은 전체 면적의 2%에 불과하다. 땅에는 이끼와 지의류만 있을 뿐 풀이나 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킹 조지 섬 쪽에는 선태식물과 현화식물도 있지만 남위 75˚가 넘는 남극대륙 안에는 거의 대부분이 지의류다. 선태식물이란 선류(蘚類)와 태류(苔類)를 포함해 약 2만3,000종으로 이루어진 식물군으로 흔히 이끼식물이라고 한다. 현화식물은 꽃이 피는 식물군으로 밑씨가 노출돼 있는 겉씨식물과 밑씨가 씨방 속에 들어 있는 속씨식물로 분류된다.
대부분 지의류만 살 수 있는 육상 생태계에서 덩치 큰 동물이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극지역에는 펭귄과 남극 도둑 갈매기로 불리는 스쿠아가 산다. 또한 300㎏이 넘는 해표도 많다.
이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바로 얼음 밑에 있는 해양 생태계가 답이다. 남극 지역의 바다에는 많은 플랑크톤과 크릴새우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남극지역의 생물은 빙산을 중심으로 서식한다.
조사단은 로스 해표를 만났다. 남극지역에 있는 해표는 5가지 종류가 있는데, 로스를 제외한 나머지 해표들은 세종과학기지 쪽에서도 볼 수 있다. 로스는 진한 회색으로 다른 해표에 비해 짧은 머리와 큰 눈이 특징이다.
혼자 혹은 암수 한 쌍으로 발견되는데, 얼음 위에서는 누워 있기만 할뿐 특별한 동작이 없다. 하지만 바다 속에서는 엄청 빠르게 수영을 한다. 혈액에 많은 산소를 운반할 수 있어 1시간 이상 잠수가 가능하다.
펭귄이 얼음에 미끄러지는 모습도 재미있다. 펭귄을 자세히 관찰하면 땅이나 눈 위에서는 두 발로 걷다가 얼음을 만나면 배를 깔고 미끄러진다. 펭귄이 배를 깔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조류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남극대륙에서는 목에 노란 털을 가진 황제펭귄도 볼 수 있다.
남극지역의 최고 포식자는 스쿠아다. 갈매기라고 하기에는 부리가 아주 뾰족하다. 그래서 '남극의 매'라고도 불린다. 스쿠아는 크릴새우와 오징어 같은 해양 생물뿐 아니라 펭귄 알이나 어린 펭귄도 잡아먹는다. 그래서 펭귄은 스쿠아를 경계한다.
죽은 스쿠아의 뱃속에서 펭귄의 털 뭉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테라노바 베이에는 스쿠아가 집단 서식하고 있는데, 조사단의 조사 결과 모두 147마리의 스쿠아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노태호 박사는 "테라노바 베이에는 펭귄이 많지 않은데, 스쿠아가 집단 서식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 지역의 해양 생태계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남극지역의 동식물이 이렇게 보존된 것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950년대 체결된 남극 조약에 따라 남극지역에서 자원개발은 하지 못한다. 다만 과학과 평화의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한 1970년대부터는 살아있는 생물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됐다. 또한 남극지역의 생물도 함부로 죽이거나 밖으로 갖고 나갈 수 없게 됐다. 그런 만큼 남극대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륙기지를 건설해 연구 활동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
케이프 벅스와 테라노바 베이
아라온의 이번 남극지역 탐사는 쇄빙 능력 테스트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대륙기지 건설을 위한 후보지를 조사하는 게 주요 임무였다.
조사단이 당초 염두에 둔 곳은 케이프 벅스. 남위 74˚, 서경 136˚의 서남지역에 위치한 케이프 벅스는 해발 120m의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폐쇄된 러시아 기지만 있을 뿐 다른 나라 기지가 없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실제 조사한 결과 환경이 척박하고 지형이 열악해 기지를 건설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평가됐다. 또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환경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비상시 안전대책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였다.
두 번째로 찾은 테라노바 베이는 입지 조건에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확한 위치는 남위 74˚, 동경 164˚. 100년 전 영국의 탐험가 스코트가 타고 온 선박 이름 '테라노바'에서 이름을 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넓은 해안이 발달해 있다.
빙하가 많고, 노출된 암반층이 많으며, 바다생물에 대한 연구도 가능해 다양한 연구 활동이 기대되는 곳이다. 또한 근처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하계 기지가 있고, 헬리콥터로 3시간 거리에 미국과 뉴질랜드의 기지가 있어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 기지가 자리하고 있어 향후 영유권 분쟁이 생기거나 남극대륙 개발이 가능해졌을 때 기득권을 주장하기에 불리한 측면도 있었다.
대륙기지 건설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남극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요인들도 고려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케이프 벅스와 테라노바 베이에 대한 조사결과 여러 항목에서 테라노바 베이가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였다. 실제 지난 3월 17일 국토해양부는 우리나라의 첫 남극 대륙기지로 테라노바 베이를 선정했다.
테라노바 베이는 접안이 용이하고, 기지 건설 및 운용의 용이성, 비상시 대처 가능성, 국제 공동연구 참여를 통한 국제사회 기여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테라노바 베이는 지난 1988년 건설된 세종과학기지와는 직선거리로 4,500km 떨어져 있다. 세종과학기지는 남극지역 북단에 있는 킹 조지 섬에 있지만 테라노바 베이는 남극대륙의 남쪽에 있다. 대륙기지는 섬기지인 세종과학 기지에서 연구하지 못했던 자기장과 오로라 등 천문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은 일은 남극조약위원회에 대륙기지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 평가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이 같은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내년 상반기 국제 승인을 받아 2012년부터 대륙기지 건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라온은 7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조한 국내 최초의 쇄빙선이다. 이 때문에 아라온이 실시한 쇄빙 능력 테스트는 모든 것이 국내 최초다. 국내 최초이다 보니 초기에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또한 얼음을 찾는 아이스 내비게이터와 얼음 규격을 검사하는 전문 인력이 없어 러시아에서 온 얼음 전문가들이 이 일을 맡았다. 아라온의 건조사양서를 보면 얼음에서 운항 및 충격 쇄빙이 가능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한 선박이 물에 잠겨 있는 평균 높이, 즉 설계 흘수 6.8m에서 1m 두께의 다년빙을 시속 3노트로 연속 쇄빙해야 한다고 돼 있다. 모터의 출력은 1만㎾. 가장 큰 문제는 조건에 맞는 얼음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라온이 항해한 1~2월은 남극지역의 여름철이라서 1m 두께의 오래된 얼음이 남아있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얼음을 찾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조건에 맞는 얼음을 찾았다. 러시아에서 온 얼음 전문가들이 얼음에 내려 100m 간격으로 드릴을 파고 얼음의 깊이를 쟀다. 그 결과 1m에서 1.2m의 두께로 밝혀져 쇄빙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라온의 초기 속도가 높지 않아 얼음의 중간까지만 갔을 뿐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얼음에 부딪혔을 때 속도는 겨우 1노트 정도로 조건을 훨씬 밑돌았다. 분석 결과 선박의 상태가 쇄빙 조건에 맞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진중공업의 임태완 특수선의장설계팀 과장은 설계 흘수가 6.8m를 유지하며 쇄빙을 해야 하는데, 7.2m 깊이로 물에 잠겨있어 쇄빙에 실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선박의 앞머리가 들려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속력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쇄빙 능력 테스트의 조건에 맞게 선박을 재조정하는데 다시 하루가 걸렸다.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평형수, 즉 선박의 균형을 잡기위해 저장한 물을 800톤 정도 버리고 선박의 뒤쪽에 있던 연료 140톤을 앞머리 쪽으로 옮겨 평형을 맞췄다. 그리고 지난 1월 29일 다시 쇄빙 능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7,500톤에 달하는 선박의 무게로 얼음을 누르자 얼음이 천천히 옆으로 비켜났다. 100m 간격으로 꽂아두었던 빨간 표지판을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여섯 개와 일곱 개 사이까지 아라온이 지나갔다. 아라온이 처음으로 쇄빙에 성공한 것이다. 이어서 실시한 후진 테스트는 오히려 쉽게 결판이 났다. 아라온은 선박의 뒤쪽에 프로펠러가 2개 달려있어 방향을 잡는데, 후진을 하니 선박의 위치를 잡기가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남아있던 300m 가량의 얼음을 뒤로 후진해 깨나가는데 성공했다. 오후에는 2개의 얼음이 만난 빙맥(육지로 치면 산맥)까지 돌파해냈다. 하지만 아라온의 쇄빙 능력 테스트는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쇄빙을 하기 위한 초기 속도가 거의 10노트 이상으로 너무 빨라 정말 쇄빙 기준을 만족했는지 의문이다. 쇄빙 능력 테스트에는 초기 속도를 4.5노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직진이나 후진뿐 아니라 선회, 유턴, T자 운항 등이 항목에 포함돼 있지만 이들 항목에 대해서는 테스트를 시도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경험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얼음 항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글_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ej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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