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는 창조적 파괴가 극적으로 전개된다. 격동의 시기에 파괴당하지 않고 오히려 산업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려면 명확한 방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트렌드를 읽고 여기에서 미래기술의 진화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재단 기술과 미래
이동성과 글로컬리티
지난 1990년대 이래 글로벌화는 시대적 대세가 됐다. 21세기에는 글로벌 단위의 통합 시장이 형성되고, 신흥국 경제가 부상하며, 글로벌 차원의 초(超)경쟁시대가 전개될 것 이다. 미래에는 무엇보다 이동성을 제고하는 기술이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가 하나로 통 합되면서 수송량이 늘어나고, 이동속도와 안전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운송비용 도 절감해야 할 필요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초고속, 초대형의 수송수단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시속 400km의 고속주행이 가능한 자기 부상열차, 축구장 2~3개 크기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이 대표이다. 물리적 이동과 수송을 대체하는 기술도 활발히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는 이 같은 기술들이 각광받을 공산이 크다. 실제 이동하는 것에 비해 저렴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원격화상진료(Telemedicine), 텔레프레즌스 (Tele-presence), 그리고 3D 프린터를 들 수 있다. 텔레프레즌스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 치 눈앞에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의 영상회 의 시스템을 말한다. 회의실에 65인치 이상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상대방을 실물 크기로 보며 회의할 수 있기 때문에 비행기 타는 횟수와 출장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시장의 범위가 지역 단위에서 글로벌 단위로 확장되면서 글로컬리티(Glocality), 즉 세계성(Globality)과 지역성(Locality) 간에 적절한 조화를 창출해 내야 한다. 지역별로 특화된 제품을 만들면 비용부담이 커지고, 세계적으로 동일한 제품만 내놓으면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특히 휴대폰, TV, 자동차 등의 제품은 글로컬리티 문제가 심각한 기술적 딜레마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글로벌 플랫폼 기술과 신흥국의 니즈에 대응한 기술, 그리고 원가가 낮은 설계기술의 개발이 동시에 필요하다. 글로벌 플랫폼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각국별 문화적 차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기술기반을 만들며,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휴먼케어와 거대도시
글로벌화가 시장의 외연을 지역 단위에서 글로벌 단위로 확장시킨다면 인구구조의 변화 는 개별시장의 내적 특성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인구구조 변화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고령소자화(高齡少子化)와 도시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소자화란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를 의미하는 소자화를 합친 개념인데, 이 같은 현상은 선진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예 상된다. 유엔(UN)에 따르면 선진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지난 2005년 15.3%(21.5 억 명)에서 2025년에는 20.7%(26.1억 명) 로 느리지만 뚜렷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 되고 있다. 고령소자화 시대에는 휴먼케어(Human -care) 기술이 각광받을 공산이 크다. 특히 주목할 분야는 삶의 질 개선과 성인병 치료 기술로 예상된다. 심신의 기능 저하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해피드럭(Happy Drug) 분야와 피부노화를 막는 안티에이징(Anti- Aging) 분야는 이미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급격한 도시화 와 함께 메가시티 간의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메가시티는 인구 1,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거대도시로 동북아에만 해도 베이징, 상하이, 서울, 도쿄 등 쟁쟁한 도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0층 이상의 수직 도시화가 전개되면서 첨단기술의 경량 콘크리트나 자기부상 엘리베이터 같은 신소재, 신구조, 그리고 신공법의 개발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또한 거대도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u-City화도 필수적이다. 즉 지능형 대중교통(ITS), 메트로 무선 네트워크, 카메라 네트워크 기반의 방범시스템 등이 21세기 도시의 새로운 인프라 구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친환경과 대체
산업화, 도시화, 인구증가, 신흥국의 경제 성장에 따른 반작용으로 21세기에는 기후변화·천연자원 고갈·환경오염 등에 대한 대응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또한 신흥국의 자 원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원자재가격 파 동, 자원 민족주의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물, 공기, 토양과 관련된 환경오염 해결 문제도 삶의 질 확보 차원에서 재조명될 것이다. 무엇보다 친환경 기술(Green Technolo gy)은 1990년대의 IT 기술만큼이나 큰 성장 잠재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선진국 들은 세계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친환경 기술 분야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중점 육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수많은 신기술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8년 2월 발표한 쿨어스 (Cool Earth) 계획에서 21가지나 되는 미래 기술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열병합발전, 그린 홈, 이산화탄소 격리저장 등 에너지 절감 및 온실가스 감축 관련 기술이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친 환경 및 저탄소 제품이 활발하게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친환경 기술이 주로 자원과 에너지의 사용 측면과 관련된 것이라면 자원과 에너지의 공급 측면에서도 대체기술이 주목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청정에너지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조력, 파력, 지열, 수소 연료전지, 바이오 및 합성연료 등의 청정에너지는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희소자원을 대체하는 신소재 기술도 활발하게 개발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석유 기반 플라스틱 대신 콩과 옥수수 등 식물 재료를 이용하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저변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태양전지 부문에서도 주재료인 실리콘의 공급난 해결과 변환효율 제고를 위해 화합물계 반도체나 염료감응형 신소재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화합물계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 에 비해 원자재 확보가 쉽고 효율도 더욱 높다. 물론 비용도 적게 든다.
감성과 창조
IT 기술은 지난 1990년대 이래 빠르게 발전 하며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왔는데, 앞으로는 3가지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네트워크의 지속적인 고도화, 진정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개막, 그리고 산업·과학·인간과의 융합이 바로 그것. 문제는 IT 기술 보급이 포화되면서 성능 제고만으로는 구매를 촉진하기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IT기기 수요 진작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모색돼야 하는데 단기적으로는 감성기술, 장기적으로는 창조 기술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감성기술은 특히 사용편의성 강화나 감성적 상호작용과 관련해 활발히 개발될 것이다. 오감센싱, 무선화,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의 사용편의성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형태를 바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례로 직관적인 터치스크린이 휴 대폰, PC 등 정보기기에 일반화되고 음성이나 동작을 인식하는 기기도 나올 것이다. 21세기 IT 기술 진화의 또 다른 키워드는 창조가 될 것이다. 즉 미래 IT 기술은 단순히 업무 효율화를 넘어 인간의 다양한 창조활동 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IT 기술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신 (新)공간을 창조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기술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다. 증강현실이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와 부가정보를 갖는 가상세계를 합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하나다. 현실의 환경과 가상의 환경을 융합하는 복합형 가상현실시스템으로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기술들은 현재 게임기, 3D영화, 스크린 골프처럼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중심으로 이용이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는 교육, 연구, 의료,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준수와 윤리
21세기에는 규제 지형도 크게 변할 전망이다. 투자, 무역, 노동 등 전통적인 국가차원의 기업규제는 점차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는 양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규제 지형의 변화에 따라 규제 준수와 윤리 가 중요한 미래기술 키워드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환경, 온실가스 규제가 전 세계 적으로 상향 수렴되면서 관련 규제를 준수 하는 기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미 유해 물질 사용제한 지침, 신화학물질 관리제도, 에너지사용제품 친환경설계지침 등 유럽 발 (發) 환경규제는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변모 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유해물질을 대체할 친환경 물질의 개발, 부품과 제품의 추적 및 재활용 체제 구축, 친환경 기술에 기반을 둔 공정 재설계 같은 대응기술 확보가 절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규제 강화는 역(逆)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에게 신사업 창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조명기기의 강자 필립스는 백열등 퇴출 규제를 활용해 LED 조 명기기 시장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바이오, 나노, 로봇 등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이 금단의 영역에 접근하면서 윤리적, 사회적 제한이 가해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 다. 이미 생명윤리나 나노기술의 위해성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바이오, 나노 등 첨단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기술 윤리가 강조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선행연구 및 기술기획 과정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구개발 초기단계부터 다양한 대안 기술 중 사회적 윤리에 저해되지 않거나 논 란 및 규제의 가능성이 적은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글_나준호 LG경제연구원 미래연구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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