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오 기술의 등장으로 다양한 형태의 약물 개발이 가능해졌다. 특히 바이오신약은 면역질환 치료의 신기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앞으로 활성화될 표적치료제(Targeted therapy) 개발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세포들이 모여 조직을 구성하고, 다시 여러 조직이 모여 간이나 심장 같은 기관을 형성한다.
따라서 우리가 병에 걸린다든지, 아니면 기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바로 세포에 이상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같은 세포의 생명현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단백질이다.
사실 우리의 몸은 무수히 많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는 생명체의 청사진이라고 불리는 DNA에 저장돼 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DNA의 정보가 RNA라는 중간물질을 통해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질병이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감염성 질환, 그리고 당뇨나 암과 같이 우리 몸 내부에서의 이상에 의해 생기는 질병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퇴치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외부의 적은 구별이 잘되지만 내부의 적은 아군과의 구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외부의 적중에서도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우리 몸의 세포 안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힘들어 내부의 적과 같은 상황이 된다.
다시 말해 질병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라 고 할 수 있으며, 특정 단백질의 양이 많아져 활성이 증가되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단백질 이상 바로잡는 것이 치료제
질병이 단백질의 이상에 의해 초래된 결과라면 이상을 일으킨 단백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물질이 질병을 치료하는 약, 즉 치료제가 된다.
특정 질환에 관련된 단백질의 활성이 증가돼 있을 때는 단백질 활성 억제물질, 반대로 단백질 활성이 저하돼 있을 때는 활성증진 물질이 약이 된다는 뜻이다.
일례로 유전적 결함에 의해 인슐린이라는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해 나타나는 질병인 당뇨병은 인공적으로 만든 인슐린을 몸속으로 주사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물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초창기의 약들은 대부분 천연물질을 원료로 해서 개발됐다. 대표적인 예가 약용식물로부터 추출한 약리물질이며, 곰팡이가 세균을 죽이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을 항생제로 개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약리물질들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천연물질에서 추출된 종류 이외에도 화학적 합성기술의 발달에 따라 많은 화합물들이 합성됐다. 이 같은 약리물질들의 특징을 하나 들자면 대개 분자량이 적은 ‘저분자 화합물’이라는 것.
실제 현존하는 약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저분자 화합물이고, 일반적으로 신약이라고 불리는 치료제의 상당부분 역시 저분자 합성 약물로 알려져 있다.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의 한계
저분자 화합물이 약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질환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약물이 견고하게 결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포켓(poket) 부위가 있어야 한다.
약물 포켓이 깊고 좁은 형태일수록 우수한 약물의 설계가 용이하다. 반면 약물 포켓이 작거나 닫혀있을 경우 좋은 약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이 같은 상태에서는 저분자 화합물의 접근로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단백질의 활성이 효소적 활성이 아닌 단백질과 단백질간의 물리적 결합에 의해 초래됐다면 저분자 화합물은 완전히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약물을 반드시 저분자 화합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단백질, 항체, RNA 등과 같은 고분자 물질이라도 질환 단백질을 억제할 수 있으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고분자 화합물은 3차원적인 구조를 인식하기 때문에 약물 포켓이 없어도 약물을 결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기술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대다수 약물이 저분자 화합물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저분자 화합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제1형 당뇨병, 류머티스 관절염,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이나 천식 등 면역질환이 지금도 난치병으로 분류돼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약물은 우리 몸에 흡수돼 혈액을 통해 질환 부위에 전달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외부에서 유입된 물질을 이물질로 판단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기능이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신체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물질(항원)에 반응해 항체를 생성, 항원을 제거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다.
저분자 화합물과 같은 기본적인 화학물질은 항원성이 없지만 고분자 물질은 항원성을 갖고 있어 약물로서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고분자 물질을 약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체의 고분자 물질과 동일하거나 아주 유사해야 한다.
바이오신약,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매김
최근 혁신적인 바이오 기술의 등장으로 특정 형태의 약물에 국한하지 않고 재조합-단백질, 항체, DNA, siRNA(간섭 RNA) 등 다양한 형태의 약물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다양한 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의 길도 활짝 열리게 됐다.
예를 들어 유전병처럼 특정 단백질이 결여돼 생기는 질환은 이들 단백질을 대체해 주어야 치료가 된다.
과거에는 주로 동물에서 필요한 단백질을 추출해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분자생물학 및 유전공학의 발달로 현재는 사람의 단백질을 세균, 효모, 동물세포에서 발현·정제해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단백질 의약품을 재조합-단백질이라고 부르며, 전형적인 ‘바이오 신약’으로 분류한다.
현재까지 10억 달러(1조원) 이상 판매된 블록버스터 신약이 약 100개 정도 되는데, 이중 바이오신약이 23개로서 이들이 형성한 시장 규모만도 520억 달러(52조원)에 달한다.
질병이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감염성 질환, 당뇨나 암과 같이 몸 내부에서의 이상에 의해 생기는 질병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이 과정에서 인슐린, 에리스로포이에틴(EPO)과 같은 생리활성 단백질 치료제와 더불어 새로운 계열의 바이오신약인 리셉터(receptor)나 항체 신약이 주요 품목으로 부상했다.
바이오신약의 역사가 20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셈이다.
20억 달러 이상의 판매를 달성한 초(超) 블록버스터 급에서도 전체 12개 중 6개를 바이오신약이 차지하는 등 바이오신약이 치료제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추세다.
표적치료제 개발 가속화 전망
특히 바이오신약은 기존 저분자 화합물의 접근이 어려웠던 면역질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전에는 면역세포와 사이토카인(cytokine) 등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의 불균형이 원인이 되어 발병하는 각종 면역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이 정체돼 있었지만 최근 재조합-단백질, 항체 등 바이오 약물에 의해 신개념의 치료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류머티스 관절염, 건선, 천식 등의 면역질환 치료제인 레미케이드(Remicade), 휴미라(Humira), 엔브렐(Enbrel, TNF-알파 리셉터), 오렌시아(Orencia, CTLA4), 아메바이브(Amevive, FLA3), 키너렛(Kineret, IL1 리셉터) 등이 그것이다. 이중 레미케이드와 휴미라는 항체이고, 나머지 4개는 리셉터-항체 융합 단백질이다.
이 바이오신약들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110억 달러(1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관절염과 같은 면역질환 시장의 주력제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는 2010년에는 표적치료제가 신약개발의 주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바이오신약이 핵심적 역활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노바티스사의 천식치료제인 졸레어(Xolair)는 50년 만에 나온 가장 우수한 천식관련 신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이오신약은 향후 가장 강력한 성장이 예측되며, 세계적인 제약사의 성장을 견인하는 추진력이 될 전망이다.
또한 오는 2010년에는 매출 증가의 약 60%가 단백질 의약이나 항체 의약과 같은 바이오신약에서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덧붙여 바이오신약은 미래의 차세대 약물인 ‘표적치료(targeted therapy)’용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승인된 표적지향 신약은 항체가 8개, 저분자 화합물이 9개로 숫자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시장 규모에서는 2005년 현재 항체가 53억 달러, 저분자 화합물이 22억 달러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향후 2015년까지의 시장 전망에서도 저분자 화합물 보다는 항체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이와 관련, 많은 제약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혁신적인 바이오 기술과 지노믹스(genomics),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등의 출현으로 특정 질환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면서 표적치료제의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IBM 연구소도 지난 2004년 “오는 2010년에는 표적치료제가 신약 개발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며, 여기서 바이오신약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 했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 시급
이러한 흐름에 맞춰 국내에서도 이미 LG생명과학, 유한양행, 녹십자, 이수, 한화 등에서 적극적으로 바이오신약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제약회사와 바이오 벤처회사들도 투자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기존의 투자를 통해 바이오 의약품 제조에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바이오신약의 경우 발굴된 표적이 제품 개발과 직결되기 때문에 표적을 확보하지 못한 국내사의 경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
이에 따라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국책 프로젝트로서 원천 표적의 발굴에 나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들어 지노믹스, 프로테오믹스 등의 기술발전에 따라 표적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표적 확보를 위한 국가 주도의 전략적인 투자가 시급한 실정이다.
글_박영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항체치료제연구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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