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일 열린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5’에서 ‘ALLIANCE(얼라이언스)’라는 단어의 8개 알파벳을 직접 준비한 장표를 통해 하나하나 강조한 것은 정부와 제조기업뿐 아니라 금융·법률을 아우르는 전 경제 주체가 함께 혁신해야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실함을 강조한 것이다. 과거의 성장이나 현재의 ‘쉬운 장사’에 머무른다면 글로벌 AI 대항해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김 장관은 그러면서 정부 역시 이 같은 속도 전쟁에 발맞추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주제 강연에서 “중국은 이미 우리를 앞서나가고 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우리가 중국을 추격자로 여겨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경고와도 같다. 그는 “중국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산업·연구·금융계가 모두 하나 된 거버넌스를 꾸려 한국을 추월했다”며 “우리도 모든 경제 주체들이 뭉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산업부는 이 같은 위기감을 바탕으로 9월 11일 ‘제조 AX(인공지능 전환)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제조(manufacture)의 앞 글자를 따 ‘M.AX(맥스)’라고 이름 붙인 이 연합에는 삼성전자·현대차 등 1000개가 넘는 국내 대표 제조 및 AI 기업,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정부는 2030년께 제조 AX에서 100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만큼 이 얼라이언스를 AI 팩토리, 휴머노이드 등 총 10개 분야별 연합으로 나누고 제조 기업과 AI 기업 간 협력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김 장관은 단순히 M.AX 얼라이언스를 구성한 것만으로는 산업 경쟁력 강화가 속도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혁신 전쟁’과 ‘속도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 한 젊은 벤처 기업 대표가 정부로부터 어떤 규제를 받을지 몰라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이용하려고 왔는데 정부 구성원으로서 죄송함이 너무 컸다”며 “기업들의 속도전을 정부가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제도와 규제를 과감하게 바꾸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산업 생태계를 각자도생식 발전에서 전 산업 간 유기적 네트워크로 바꿔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불과 약 7년 전만 해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서 뒤처지던 대만이 이제 우리 앞에 서게 된 것은 반도체 제조기업과 수요 기업 간 생태계가 탄탄하기 때문”이라며 “우리 산업계에는 삼성전자·SK·현대차 등 독보적인 회사가 있고 각자 훌륭한 혁신을 빠르게 해냈지만 AI 시대에는 함께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부에서 에너지 기능이 떨어져 나가서 어떡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그동안 정부는 조세·재정·금융·산업·통상 같은 정책을 따로따로 내놓았지만 AX 시대에는 모든 정책을 통합해 생태계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정책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기업들처럼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 업계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금융이 보다 생산적이고 미래 가치가 있는 분야와 젊은 기업인을 제대로 평가해준다면 많은 자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텐데 금융권은 너무 쉬운 장사만 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산업 AX를 위한 융합의 길에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 등 이슈가 불거지면 돈을 제일 많이 버는 곳이 로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법률의 힘이 크다”며 “법을 만들 때도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김 장관은 이 같은 도전에도 한국의 저력이 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그는 “우리에게 인력도 부족하고 금융에도 한계가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한국이 가진 제조 역량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장관은 이날 산업 AX를 위한 정부의 자세를 문태주 시인의 시 ‘잘한 일’의 시구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시에 ‘토마토 순에 지지대를 대주었다’ ‘싫어할 소리를 하지 않았다’ 등의 구절이 있는데 이처럼 정부도 AI 대항해 시대에 산업계와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고 규제 완화, 재정 지원 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