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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앉아 계절을 보듯 넷플릭스서 한국의 거리를 본다’…유현준 교수가 본 한류의 형성

18세기 일본 목판화 풍경에 빠진 서구권,

이젠 제니 뮤비 속 한국 길거리가 ‘힙한 공간’

가상공간의 성장·한국산 첨단제품의 발전

OTT 플랫폼과 맞물려 세계적 주목 이끌어내

2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2025 넷플릭스 기자 송년회에서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넷플릭스




한류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가상공간, 한국의 첨단기술, 넷플릭스를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이 첨단 기술 국가로서 해외의 동경을 받는 위치에 올라섰고 가상공간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의 도시와 문화를 접하면서 세계인의 마음속에 K컬처가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과거 모든 로마인들이 원형극장에서 모여 같은 연극을 보듯 세계인들이 K영화나 K드라마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면서 한류가 전세계의 공통 경험이 됐다는 것이다.

물리적 조건 뿐 아니라 머릿 속 인식까지 ‘공간’…마당에서 보던 외부 변화, 이제는 미디어로 포착


이탈리아 로마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 있는 천장화 ‘성 이냐시오의 영광’. 원근 투시화인 이 그름은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 공간이 확장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Wikimedia Commons


유 교수는 한류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앞서 공간의 개념을 정의했다. 공간이란 실제 물리적인 공간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만들어내는 공간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로마 교회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올려보면 실제로는 10피트 높이에서 막힌 천장이지만 마치 무한히 공간이 확장된 것으로 느껴지는 이치다.

유 교수는 특히 인간의 뇌가 시각 정보를 접할 때 공간 정보를 채워 넣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보는 것은 이미지 지만 머리 속에서는 생생한 공간을 만들 능력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화는 초 당 32장, 애니메이션 영화는 초당 16장이지만 만화는 초당 한 컷 정도의 이미지를 본다”며 “1초에 한 컷이라도 그 안에서 우리의 의식이 (빈 공간과 흐름을) 다 채워 넣기 때문에 스토리도 파악하고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현대인이 하루 3분의 1의 시간 동안 스마트폰 등으로 접하는 인터넷 가상 공간도 실제로 우리가 물리적으로 생활하는 공간 못지 않게 우리의 의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 전달하는 콘텐츠의 집중력은 더욱 강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인간은 외부 변화를 포착하고 대응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환경 변화를 볼 때 신경세포가 활성화한다”며 “과거 마당에서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보던 사람들은 이제 실내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미디어 화면을 통해 나오는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모든 시민들이 한 연극을 보며 공통의 감정 상태를 경험한 것처럼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 전하는 한국 콘텐츠를 보며 해외 시청자들이 공통된 심리를 체험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 교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힘이 있는 것”이라며 “1980~90년 대에는 베버리힐스 아이들, 프렌즈를 보면서 미국의 LA와 뉴욕이 가장 멋진 곳처럼 사람들이 느꼈지만, 지금 자라나는 이들은 블랙핑크 제니의 뮤직비디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지금 우리 한국인이 생활하는 일상 공간을 접하고 가장 힙한 공간이라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8세기 유럽 정원의 모습을 바꾼 日도자기…21세기엔 韓 첨단기술이 K-컬처 동경 불러와


유 교수는 “어느 시대든 첨단 기술을 가진 나라를 문화적으로도 동경한다”고 했다. 18세기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 시절부터 1970~1990년 미국의 제조업 패권 시절의 헐리우드 문화에 이르기까지 첨단 제품이 지니는 문화적 영향력은 시대를 거슬러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주석 그릇을 쓰던 18세기에 중국과 일본의 세라믹 도자기는 지금으로 치면 엔비디아의 AI반도체 였다”며 “당시 일본 도자기의 영향으로 유럽의 정원의 모습이 바뀌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과정은 이렇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에서 삼각돛 범선이 확대됐다. 바람을 활용할 수 있게 되자 유럽의 무역 범위는 지중해를 넘어 아시아까지 확장했다. 무역 품목도 향신료 중심에서 일본산 도자기와 같이 크고 무거운 품목으로 다양해졌다.

이 때 당시 유럽으로 가는 일본산 도자기의 포장재로 쓰이던 종이들은 바로 일본의 목판화. 당시 최고 인기 제품인 아시아 도자기를 포장한 목판화 속 일본 풍경은 곧 문화적 유행이 됐다. 유 교수는 “당시만 해도 유럽의 정원은 세모, 네모 등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됐지만 도자기 포장지 속 동양의 정원 풍경은 시선에 따라 자연스러운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며 “이는 픽처레스크라는 영국의 정원 양식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가 픽처레스크 기조를 담은 공원”이라고 소개했다.

에도 말기의 목판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가나가와 오키나미 우라’ 유럽으로 건너간 도자기와 함께 일본의 풍경을 담은 목판화가 전파되면서 동양 문화가 유럽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USGS


미국 내 한류 역시 이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 유 교수의 분석이다. 1990년 대 이후 미국은 금융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한 반면 한국의 제조업은 TV와 스마트폰, 자동차를 중심으로 급성장하면서 이제는 첨단을 달리는 기술 국가의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의 덕을 보았다”며 “우리의 콘텐츠를 이제 전세계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우리 기술의 발달로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대한민국의 콘텐츠를 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런 요소들이 현재 우리 K-컬처가 힘을 가지게 되는 그런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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