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선 시장 점유율이 1999년 전 세계 톤수 기준 5% 미만에서 2023년 50%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상선대 보유 비중 역시 전 세계의 19% 이상으로 확대돼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중국 조선·해운 산업에 대한 301조 조사 보고서에서 이러한 지배력은 정부의 불공정 개입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해운 및 조선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렸으며 이는 미국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미국은 지난 20여 년간 조선과 해운업에 거의 투자하지 않아 글로벌 선박 건조 능력의 0.1%만을 보유한 상태다. 반면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을 통해 자국 해사 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올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조선·해운업 재건에 나섰다. 막대한 신탁 기금을 조성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선 건조 능력을 다시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미국의 조선업은 이미 건조 야드, 기술, 인력 기반까지 붕괴된 상황이다.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 조선소 재건을 위한 투자를 요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역시 최근 조선·해운 등 해사 클러스터 4개 단체가 조선업 재생을 위한 정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일본은 에너지·식량·자원 등 핵심 전략물자를 일본에서 만든 선박과 일본 해운 회사를 통해 운송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조선업을 경제안보 차원의 전략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선박 강재비 차이를 보전하는 보조금과 대규모 기금 조성 등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자유무역론자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조차 ‘국부론’에서 조선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할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조선업이 영국 해군력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가 안보를 지탱한 핵심 산업이라며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의 조선업 부흥을 향한 절박한 움직임은 머지않아 한국에 닥칠 상황일지 모른다. 지금처럼 조선업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경우 한국 또한 미국처럼 주요 선박 건조를 모두 중국에 넘겨주는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 실패가 두드러진 벌크선·유조선·중소형선 부문은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 2024년 벌크선 수주 척수를 보면 중국 936척, 일본 352척에 비해 한국은 고작 1척에 불과하다. 벌크선은 전쟁 등 유사시 전략물자를 운송하는 중요한 수송 수단이다. 중국과의 선가(船價) 차이도 20~30%에 달해 시장 논리만으로는 국내 건조가 사실상 어렵다.
친환경 전환 기금 조성을 위한 정부 정책 또한 시급하다. 국제사회의 배출 가스 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전환은 국제 경쟁력과 직결돼 있다. 유럽연합(EU)은 친환경 전환 기금을 조성해 선박 건조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도 ‘제로 배출 선박’ 실현을 위한 로드맵에 따라 투자 기금을 마련 중이다. 중국은 더욱 직접적인 정부 자금 지원으로 친환경 선박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조선·해운업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만큼 산업통상부와 해양수산부는 국가 차원의 발전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선박을 국내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해운·조선·기자재 등 해사 생태계를 되살리고 친환경 선박 건조 활성화로 조선·해운 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조선·해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해 체계적인 지원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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