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최대 맹점은 새 집을 더 좋아하는 국민들의 심리가 제대로 존중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불 펴고 누우면 신축이나 구축이나 똑같은데 왜 새 집에 집착하느냐는 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서울도 주택 부족 단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3년 말 기준 서울의 가구 수는 약 414만 1700가구인데 주택 수는 387만 5000가구로 주택보급률이 93.6%에 이르기 때문이다.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되는 오피스텔(26만 실, 2024년 기준)을 더해 단순 계산하면 주택보급률이 거의 1대1 수준까지 상승한다. 주택 수를 따질 때 다가구나 원룸을 쪼갠 쪽방 같은 곳도 포함된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통계로만 봐서는 주택이 심각한 부족 단계에 놓여 있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새 집, 그중에서도 아파트를 따져보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입주 10년 차 새 집에 포함되는 2015~2024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을 모두 더해보면 30만 가구 안팎에 불과하다. 극단적 가정이지만 서울 414만 가구가 전부 새 집을 원한다고 상정하면 주택보급률이 7%대에 불과한 셈이다. 그나마 서울 밖 지방의 잠재수요는 뺀 수치다.
사람들이 원하는 새 집 공급이 만성적으로 부족하니 수요자들이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이 금리 인하와 같은 불씨를 만나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실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6개월 만에 3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며 일단 투자 심리를 눌러놓았지만 길어야 2달 내지 3달짜리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보는 근본적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주택 구입이 죄라도 되는 양 몰아붙이면서 정작 본인들과 그 자녀들은 서울 강남 최선호 요지에 줄줄이 아파트를 사놓은 정책 설계자들의 이중성도 정책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괜찮은 곳에 아파트를 무더기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단 정부에서는 서울에 땅이 별로 없어 아파트를 짓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9·7 부동산 대책에서도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으로 서울 어느 곳에 짓겠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아 오히려 불안 심리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가는 곳마다 “그린벨트를 더 풀어서라도 주택을 짓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서울 중심부에는 집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땅이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땅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 설정이 잘못돼 방치되거나 낭비되는 부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로구청 재개발이다. 종로구는 8만 4000㎡인 옛 종로구청 부지에 지하 6층~지상 16층 규모의 통합 청사를 지을 계획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알토란 같은 부지에 규제를 대거 풀어서 50층 이상 건물을 짓고 종로구청 청사와 임대주택을 함께 지었다면 최소한 수백 가구는 공급할 수 있었을 텐데 볼 때마다 아쉽다”며 “땅이 없는 게 아니라 규제가 많고 이 규제를 풀어낼 아이디어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로구청뿐 아니라 서울 대다수 구에 컨벤션센터, 첨단 바이오산단, 예술공연장 등 설득력 없는 개발 플랜을 걸어 두고 장기간 방치된 유휴 부지가 적지 않다. 선거에 표가 필요한 정치인과 우리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돼 집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만들어 낸 이익공동체의 고리가 단단히 엮여 있는 것이다.
경제 부처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만약 서울 25개 구에 임대아파트 5000채씩만 지으면 서울에 12만 5000가구가 공급돼 집값을 단숨에 잡을 수 있다”며 “속도를 더 빨리 내는 구청에는 중앙부처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주고 아파트 1채당 1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면 재정 조달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런 방식의 공급 대책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은 12조 5000억 원으로 올해 민생회복지원금을 주는 데 쓰인 13조 1000억 원보다 적은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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