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포집·저장(CCS)은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기 직전 단계에서 화학적 액체 흡수제나 분리막 등을 활용해 포집한 뒤 이를 폐가스전과 같은 지하 암석층에 영구 저장하는 기술이다. 탄소 다배출 산업의 활동을 급격히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어 영국·유럽연합(EU)·호주 등은 이미 정부 주도로 CCS뿐만 아니라 CCS에 재활용의 개념까지 추가한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실증만 된다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성장 산업인 셈이다.
우리 정부도 2021년부터 동해 가스전에 약 3조 원을 투자하는 실증 사업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잠재력 때문이다. 동해에서 감축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규모만 120만 톤에 이른다는 게 정부 추산이었다.
하지만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이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심사를 또다시 자진 철회하면서 사업 실현 가능성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후부는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 간판을 달고 있던 7월에도 “경제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예타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산업부는 경제성 분석을 보완해 8월 말 예타 심사를 재신청했는데 정부 조직 개편 이후 사업을 물려받은 기후부가 이마저 철회한 것이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기재부 재정 사업 평가에서 일단 탈락하면 향후 재평가에서 ‘미흡’ ‘수요 과대평가’와 같은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심사 받기가 더 까다로워지고 향후 재정 사업 우선순위에서도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 자진 철회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재로서는 국내 CCS 사업의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정부와 산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탄소를 묻는 것보다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는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CCS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설정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2030 NDC에서 설정한 CCUS 규모는 1120만 톤CO2eq(이산화탄소 환산량)에 달한다. 이 목표는 최근 정부가 확정한 2035 NDC에서 최대 2030만 톤으로 약 2배 더 늘어난 상황이다.
국내 에너지 기업의 한 관계자는 “CCS 및 CCUS는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 없이 민간투자로는 진행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정부가 예타부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민간에서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 주도 투자 없이 CCS가 이뤄지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영국은 2023년께 CCS 인프라에 200억 파운드(약 33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EU 최초 CCS 프로젝트인 네덜란드 포르토스 CCS 프로젝트 역시 EU 및 네덜란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한 해외 메이저 자원개발사의 관계자는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동남아시아 일대 폐유전에 묻기 위한 CCS 투자를 검토 중인데 CCS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CCS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며 “예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CCS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제조 업계 역시 같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2018년보다 최소 53%, 최대 61% 감축하겠다며 목표치를 대폭 상향했는데 정부의 세부 지원 방식이나 소요 재정 규모는 여전히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제조 업계의 관계자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는 24.3~31%인데 산업 부문 내부에서도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어떤 산업에서 탄소를 얼마나 감축하겠다는 것인지 몰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CCS 규모가 줄어들 경우 산업 분야의 감축 수단이 재생에너지·전기화 등으로만 제한돼 산업계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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