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D램 품귀 현상이 심화하면서 월·분기 단위로 이뤄지던 가격 협상이 6개월 이상 장기 공급계약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심각한 D램 공급 부족으로 내년에도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자 수요 기업들도 반년물 계약에 적극 응하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내년 물량도 확보하기 어렵자 2027년 공급 계약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17일 “D램 시장이 장기계약 우위 시장으로 전환했다”라며 “2017년 슈퍼사이클 시장보다 더 강한 매수 수요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D램은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임시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 AI가 탄생하면서 GPU의 역할이 커졌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D램을 층층이 쌓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가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의 HBM을 1년 단위 장기 계약으로 입도선매하는 관행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최근에는 HBM 뿐 아니라 범용 D램까지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픈AI와 메타 등이 수백 조 원 단위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힌 데다 전 세계 주요 기업과 정부가 자체 AI 개발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지으면서 더블데이터레이트(DDR)·그래픽(G) DDR·저전력(LP) DDR 등 범용 D램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용 D램은 HBM보다 성능은 낮지만 AI의 추론과 연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기업을 중심으로 D램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 공급과 관련해 주요 수요 기업과는 반기 단위로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반도체 D램은 매월 고정가격으로 공급하고 이후 시장 가격을 반영해 제품가를 조정하는 월 단위 계약이 이뤄진다. 하지만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D램 수요가 폭증하자 계약 단위는 분기 단위를 넘어 반기 이상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조정되고 있다. 수요 기업들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할 뿐 아니라 반년 이상 공급을 보장받는 계약을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D램 물량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3분기 말 기준 ‘제품 및 상품(완제품)’ 재고자산은 3조 4043억원으로 전분기와 비교해 14.6%(5804억원) 줄었다. SK하이닉스 역시 재고가 줄고 있다. 올 3분기 '제품 및 상품' 재고 자산은 2조 1522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3689억원 줄었다.
D램 품귀 현상으로 시장에서는 2027년 공급 계약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D램 공급 계약을 모두 끝내고 2027년 공급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D램이 품절되자 글로벌 빅테크 등 수요 기업들은 삼성전자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내년 생산될 대부분의 물량은 이미 공급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수요가 폭증하자 삼성전자는 D램 공급가를 40% 이상 인상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업계는 D램 시장이 장기 공급계약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슈퍼사이클이 적어도 202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조사는 장기공급계약이 많아지면 생산 단가와 유통을 비롯한 생산 계획 수립이 수월해지고 이익은 개선된다. 업계 관계자는 “월·분기 단위로 이뤄지던 반도체 계약이 반기 단위로 갱신되면서 다시 가격이 오르고 있다” 며 “2027년까지 현재보다 더 높은 가격에 장기공급계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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