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과징금을 시장의 예상보다 4조 원가량 적은 1조 원 안팎으로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감면 받을 경우 5000억 원대 아래로도 내려갈 전망이다. 은행들의 적극적인 배상 조치를 감안한 것인데 이대로라면 적지 않은 과징금에도 은행들의 경영 불확실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시중은행들에 ELS 불완전판매 과태료 및 과징금 조치안을 통보하고 다음 달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업계에서는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주요 5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에 4조~5조 원 내외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이달 17일까지 입법 예고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 감독 규정 개정에 따라 과징금을 대폭 감경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적으로 과징금은 위반 금액에 부과기준율을 곱해 산정되는데 개정안 적용 시 부과기준율이 기존 75%에서 35%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동일한 위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정비하고 피해를 적극 배상한 은행의 경우 기본 과징금의 50% 이내로 감경할 수 있다. 이를 최대로 적용하면 부과액은 1조 4000억 원대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과징금 규모를 정하는 금융위원회의 판단에 따라서는 수천억 원대 수준까지 과징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개정되는 감독 규정에 따르면 감경 후 과징금이 위반 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액의 10배를 초과하는 경우 금융위가 부당이득액의 10배 한도로 감액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실이 확정된 ELS 판매분에 대한 수수료 수익을 부당이득으로 볼 때 부당이득 10배 상한을 적용하면 5개 은행의 총과징금은 산술적으로 5900억 원 안팎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의 조직적 위반 행위나 고의 중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과징금이 당초 예상보다 대폭 감경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은행권의 제재 관련 우려와 경영 불확실성도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판매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의 경우 당초 조 단위 과징금이 예상됐지만 최대 감경 시 3000억 원 안팎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당국이 입법 예고한 금융소비자보호법 감독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기준율은 위법성에 비례해 세분화된다. 기본 과징금 산정은 위반 금액에 부과기준율을 곱해 계산한다. 감독 규정이 개정되기 전에는 5개 은행의 기본 과징금 산정액이 5조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부과기준율 하한이 내려가면서 과징금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변경된 부과기준율표에 따르면 ‘매우 중대한 위반 행위’의 경우 기존 100%에서 65% 이상 100% 이하로, ‘중대한 위반 행위’일 경우 기존 75%에서 30% 이상 65% 미만으로, ‘중대성이 약한 위반 행위’일 경우 기존 50%에서 1% 이상 30% 미만으로 세분화했다. 부과기준율 하한이 50%에서 1%로 내려간 셈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5개 은행의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행위는 감독 규정 세부 평가 기준표 상으로 1.7점을 받아 중간 단계인 ‘중대한 위반 행위(1.6점 이상 2.3점 미만)’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은행이 조직적·고의적으로 H지수 ELS 불완전판매를 행했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위반 행위 역시 과거 수익률이나 청약철회권 미기재 등 부당성이 경미한 사안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홍콩H지수 손실 사태 이후 다시 지수가 상승하면서 상품의 상당 부분이 정상적으로 상환되고 배상 역시 완료된 점도 감경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부과기준율은 35%를 적용받게 되면서 5개 은행의 전체 기본 과징금은 총 2조 8000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규정에서는 75%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돼 예상 과징금 규모가 5조 원대까지 예상됐는데 크게 줄어들게 된 것이다.
사태 이후 은행들이 내부통제 강화와 배상 노력을 기울인 점을 인정받아 별도의 감경 사유도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감독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동일 또는 유사한 위반 행위의 재발 방지를 위해 충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이행하고 위반 행위로 인한 금융소비자 등의 피해가 있는 경우 그 피해를 적극적으로 배상하는 등 사후 수습 노력이 인정되면 기본 과징금의 100분의 50 이내에서 감경할 수 있다. 이를 적용받으면 5개 은행의 과징금은 1조 4000억 원대로 내려가게 된다. 은행별 홍콩 ELS 판매액은 국민은행이 8조 1972억 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2조 3701억 원), NH농협(2조 1310억 원), 하나(2조 1183억 원), SC제일(1조 2427억 원), 우리(413억 원) 등의 순이다.
금융위원회 결정에 따라 ‘부당이득액의 10배 한도’ 규정까지 적용될 경우 과징금 규모는 더 줄어든다. 금융계에 따르면 손실이 확정된 ELS 판매분에 대한 수수료 수익은 1000억 원 미만에 불과해 은행권의 최종 과징금 금액은 5900억 원 이하로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단순 계산상으로는 국민은행이 3000억 원대,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800억 원 대, 하나은행 690억 원대, SC제일은행이 460억 원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는 현재 알려진 판매 금액을 기준으로 추산한 금액으로 실제 금융 당국이 판단한 금소법 위반 규모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실제 과징금 규모는 더 낮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 금융위는 2023년 8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현 KCGI자산운용) 대표의 광고 규제 위반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시 이를 적용한 바 있다. 기존 과징금은 22억 2500만 원이 부과될 예정이었으나 위반 행위 대비 과징금 규모가 과중한 것을 고려해 위반 행위로 얻은 수수료의 10배에 해당하는 9억 7400만 원만 부과했다.
과태료 역시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태료 부과 대상 중 조치 근거가 불분명한 건들이 적지 않게 있는 데다 과징금과 마찬가지로 과거 조치 선례상 부과 예정 금액의 10배 한도 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과태료 역시 10배 상한 적용 시 위반 행위별 과태료 금액은 최대 10억 원가량에 불과해 5개 은행에 부과되는 과태료 총액은 200억 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위의 최종 절차를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과징금 규모가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23일 열린 제재심에서 제척기간을 앞둔 건(2020년 말∼2021년 초 판매)에 대한 과태료를 확정해 녹취 의무 위반 등에 관한 소규모 과태료를 부과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제재가 곧 마무리되면서 경영 불확실성 역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seop@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