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 허가 결정이 내려진 13일 에너지 업계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관련 업계에서는 고리 2호기 재가동 심사가 올해를 넘겨 내년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신규 원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최소한 기존 운전의 계속운전까지는 막지 않겠다는 기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원전 계속운전 여부를 평가하는 데 지나치게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번 심사에서도 안전성 평가 기관과 심사 기관이 모두 동원됐는데도 최종 허가까지 총 3년 7개월의 시간이 소모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속운전을 심사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주기적안전성평가(PSR)를 거친 뒤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PER) 등의 서류를 구비해야 한다. 거기에 까다로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의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심사에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정치적 요인까지 겹쳐지면 원전 계속 가동 연한이 더 줄어든다. 실제 고리 2호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 설계수명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채 계속운전 절차에 돌입한 탓에 결과적으로 최종 승인도 늦어졌다. 원안위가 고리 2호기의 수명을 2033년으로 10년 연장했지만 실제 추가 가동한 기간은 7년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설계수명이 다해 각각 2024년 9월, 2025년 8월 가동을 멈춘 고리 3호기와 4호기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두 원전 모두 2022년 9월 계속운전을 신청했지만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이 이제야 승인된 상황이어서 두 원전에 대한 절차는 수개월 더 걸린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앞으로도 계속운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 노후 원전은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1호기의 설계수명은 올해 12월까지다. 내년 하반기에는 한빛 2호기와 경북 경주의 월성 2호기의 수명이 만료될 예정이다.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다하는 원전은 7기에 달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설비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가동할 수 있도록 이들 모두에 대해 원안위에 계속운전을 신청했다. 하지만 여러 원전에 대한 심사가 중복될 경우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가동 정지 중인 원전을 포함해 국내 전체 원전의 35%가 향후 5년 내 특별한 문제 없이도 설비를 놀릴 위기에 처한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속운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안위의 심사 역량에는 한계가 있는데 노후 원전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며 “계속운전 심사가 몰리는 기간에 한해서라도 원안위와 KINS 조직을 확충해 원전이 적기 가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명 연장 폭 자체를 늘리자는 지적도 나온다. 이기복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한 번에 운영 허가 기간을 20년씩 늘린다”며 “설계 연장에 드는 행정 비용을 고려하면 원전 수명 연장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지난해 기준 총가동 원전 94기의 89%인 84기의 설계수명이 20년 연장됐다.
일각에서는 설계수명을 면허 기간으로 한정하는 현행 제도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계수명은 상품의 보증 기한과 같이 발전소 도입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주 설비의 안전한 운영이 가능한 기한을 제시한 것일 뿐 실제로는 적절한 보수를 거치면 그 기간을 넘겨도 원전은 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많은 나라들은 원전의 설계수명이 도래하면 일정한 설비 개선과 안전성 평가를 거친 뒤 사용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원전을 계속 활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이다.
한편 이날 원안위에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안건은 표결로 의결됐다. 9월·10월 회의와 같이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인 진재용 원안위원이 반대 의견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위원은 고리 2호기가 운영 허가를 받은 당시와 현재의 변화가 담긴 자료가 제출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원안위 사무처는 관련 규정상 최신 평가만으로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최원호 원안위원장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표결을 선언해 찬성 5인, 반대 1인으로 원안 의결됐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후 원전의 재가동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까지 백지화될 경우 폭발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운만큼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유연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oojh@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