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단순히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일’로 여겨지던 전통 농업은 이제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 환경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복합 산업으로 진화했다. 이제 농업은 에너지와 환경, 국민 건강을 동시에 지탱하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을 방문한 필자는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브라질은 비옥한 토양과 유리한 기후 조건을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농업 강국이 됐지만 현재 토양 산성화와 기후 불안정, 약제 저항성 같은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현지 전문가들은 그 해결책으로 친환경 미생물 기술에 주목하고 있었다. 마침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이상기상과 병해충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는 미생물을 개발해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었다. 더불어 한 국내 기업이 자체 개발한 제초제를 우리 정부 협력으로 브라질 현지에 등록했다는 소식은 우리 기술력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신호였다. 그 순간 “우리 기술이라면 세계 어디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농자재 수출의 첫걸음은 ‘현지 표준화’다. 각국은 토양과 기후·작물 특성이 달라 동일한 제품이라도 성능과 안전성을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 테스트베드 운영과 표준 등록 시스템 구축이 필수다. 자동차 산업이 좋은 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유럽의 배기가스 규제와 충돌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현지 연구소를 설립해 신뢰를 확보했다. 농자재 산업도 이와 같은 ‘글로벌 표준 적합 전략’이 필요하다. 현지 인증 체계와 사용 지침을 함께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시장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또 단품 중심의 수출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패키지형 수출 모델’이 절실하다. 농약, 비료, 종자, 농기계, 재배기술, 디지털 관리 솔루션을 하나로 묶어 현지 여건에 맞는 통합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은 농기계, 비료, 기술 지도를 묶은 ‘일괄 패키지 모델’로 동남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다. 한국도 토양 분석부터 병해충 관리, 데이터 기반 영농 솔루션까지 통합한 수출 모델을 구축한다면 기술력 이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농업 후방 산업의 파급력은 매우 크다. 비료·농약 같은 기초 자재의 수출이 확대되면 그에 연동된 스마트팜 장비, 농산물 가공, 물류 산업까지 ‘K농업 밸류체인’ 전체가 성장한다. 즉 농자재 수출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K푸드와 K스마트팜으로 이어지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정부는 국가 간 인증·표준 협력을 확대하고 해외 테스트베드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기업은 현지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제품뿐 아니라 서비스와 교육까지 함께 수출해야 한다. 특히 현지 농민과의 신뢰 구축은 장기적 경쟁력의 핵심이다. 농자재가 아닌 ‘농업 솔루션’을 제공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농업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기술을 글로벌 표준에 맞춰 현지화하고 통합 패키지 모델로 수출한다면 K농업은 새로운 성장 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결국 농자재 수출은 신뢰와 시스템의 문제다. 현지 표준화를 통해 신뢰를 얻고 패키지 모델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K농업은 세계시장의 주역이 된다. 한국의 농업기술이 지구촌 식량 안보와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날, 우리는 ‘기술 수출국’을 넘어 ‘농업 강국 대한민국’으로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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