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세계 2위 수준임에도 젊은 이공계 연구자들의 해외 이직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내 연구개발자 10명 중 4명 이상이 향후 3년 내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 젊은층에서는 그 비율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이공계 인력 해외유출 결정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0년 9000명에서 2021년 1만 8000명으로 두 배 늘었다. 인재 유출은 바이오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확대됐으며 서울대·카이스트·포스텍·연세대·고려대 등 국내 주요 대학 출신 연구자들이 전체 유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대졸 이상 인구 대비 미국 취업이민(EB-1, EB-2) 비자 소지자 수는 인도·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았다.
향후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이공계 인력도 상당하다. 한은이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국내외 연구자 2694명(국내 1916명·해외 7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에 체류하는 연구자 중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 보면 20, 30대에서는 그 비중이 70%에 달했다
연구자들이 해외 이직을 선택하는 이유로 금전적 요인(6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로 최종 학위를 딴 해 국내 이공계 인력 평균 연봉은 약 5800만 원, 해외로 나간 인력의 평균 연봉은 11만 4000달러(약 1억 6300만 원)로 나타났다. 이 밖에 연구 생태계와 네트워크(61.1%), 경력 기회 보장(48.8%) 등 비금전적 요인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1%는 이공계 인력 해외 이직을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과감한 금전보상(28.8%)보다 연구환경 개선(39.4%)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연구환경과 근무 여건에서 국내와 해외 간 격차가 큰 점이 이직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난 대목이다.
실증 분석 결과 소득 만족도가 한 단계 개선될 경우 해외 이직 확률은 4%포인트 감소했고 승진경로와 고용안정성의 만족도가 개선될 경우에도 해외 이직 의향은 약 4~5%포인트 낮아졌다.
석사급 연구자는 승진 기회와 연구 환경, 박사급 연구자는 고용 안정성과 자녀 교육이 해외 이직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전공별로는 바이오·IT 등 신성장 분야에서는 연구 환경과 자녀 교육, 그 외 분야에서는 고용 안정성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구진은 이공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정책 핵심 방향으로 △금전적 보상체계 혁신 △R&D 투자 실효성 강화 △기술창업 기반 확충·전략기술 개방을 통한 혁신 생태계 확장 등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를 쓴 최준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과장은 "평균적으로 해외 연구자들의 연봉은 국내 연구자들의 2배 수준"이라며 "보상체계 전환은 이공계뿐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의 인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추진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인적투자 세액공제의 실효성 강화나 핵심 인력에 대한 소득세 감면제도 확대 등 과감한 정책적 조치가 인재 확보와 육성에 실질적인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R&D 투자 확대도 필수 과제로 제시됐다. 연구 인력이 국내에서도 성장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경력 트랙 △해외 연구기관과의 교류 강화 △첨단 인프라 접근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혁신 생태계 확장도 강조됐다. 정부가 실패한 창업자의 재도전 기회를 늘리고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 회수 메커니즘을 강화해 투자 수익 실현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괴장은 “기술창업 기반을 강화하고 우주항공·방산 등 안보 분야에서 전략기술 활용을 통한 혁신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도 혁신을 촉진할 뿐 아니라 인재 유출을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국방 기술을 민간에 점진적으로 개방해 시장 접근성을 높였고,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고위험·원천 기술을 개발 초기부터 민간과 협력해 상용화 경로를 제도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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