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일주일 뒤인 22일 규제 지역 서민 정책대출을 은행에 떠넘긴 것은 예상치 못한 기금 누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하고 손을 쓴 것으로 보인다.
디딤돌 대출은 담보주택의 평가액이 최대 6억 원(신혼, 2자녀 이상 가구 기준)으로 신청 기준을 제한하고 있다. 규제 지역에 대해서는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대출 자금을 내주도록 규정돼 있었지만 서울 강남 3구나 용산구 등 기존 규제 지역 내 대다수 주택의 가격이 신청 기준을 크게 웃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정책대출을 찾는 수요가 미미해 정부 입장에서는 규정을 지키는 데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 따라 서울 외곽은 물론 경기 지역으로까지 규제 지역이 넓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규제 지역으로 새로 지정된 서울 금천구(한국부동산원 기준 5억 9100만 원), 도봉구(5억 7500만 원) 등 서울 외곽과 수원 장안구(5억 원) 등 일부 경기 지역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지난달 기준 정책대출 기준치를 밑돈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 정책대출의 밑천 격인 주택도시기금이 빠르게 줄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로서는 늘어날 수요를 감당하기 빠듯한 상황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주택도시기금의 여유 자금은 2021년 45조 원을 기록한 이래 매해 줄고 있으며 올해 7월 기준 10조 6000억 원으로 3년여 만에 76.4%나 급감했다. 정부 관계자는 “몇 년 새 정책대출 수요가 꾸준히 늘어 사업비는 뛰었는데 수입원인 청약액은 줄어 기금 유동성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규제 지역이 몇 곳 안 됐을 때는 기금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는데 이번에 대상지가 대거 늘다 보니 은행 재원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은행이 대신 취급해야 하는 상품은 △일반 디딤돌 대출 △디딤돌 생애최초 △전세사기피해자 디딤돌 등 디딤돌 대출 일체다. 대책 발표 직후인 16일 접수된 건부터 소급 적용해 시행한다.
중요한 것은 은행 재원으로 나가는 대출이 늘면서 은행의 손실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 정책대출을 먼저 취급하면 정부는 시중금리와 정책상품 간 금리 차이를 감안해 6개월마다 손실을 일부 메워준다. 하지만 금리 차이를 최대 0.99%포인트까지만 인정하다 보니 은행의 손실이 전액 보전받지는 못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책대출이 워낙 저리로 공급되다 보니 고객들이 가능한 늦게 상환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책대출이 늘수록 자금을 묶어두는 셈이라 기회비용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고강도 규제로 생긴 문제를 은행이 뒷수습하도록 한 것을 두고 볼멘소리가 새어나온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은행별 대출 한도를 반 토막내면서 올해 가계 부문 영업은 물 건너간 상황”이라며 “문제가 있으면 일단 금융사에 책임을 넘기는 식이라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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