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가능한 모든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어떤 방안도 제대로 타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죠.”
중국발 공급 과잉에 공멸 위기에 빠진 석유화학 업계를 향해 정부가 구체적인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런 애매한 대답만 돌아올 뿐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제시한 연말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지만 울산·여수·대산 등 석화 산업단지 어디에서도 빅딜은커녕 스몰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굳이 먼저 나서 손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석화 업체들의 ‘눈치 싸움’을 말릴 유인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공급 과잉이 출발점인 만큼 구조조정의 핵심은 에틸렌 생산량 감축이다. 이미 구축된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통폐합하려면 설비 철거 비용은 물론 새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석화 업체 간 혹은 석화 업체와 정유사 간 구조 개편이 폭넓게 협의되고 있지만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한 공회전만 거듭할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버티면 업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역시 구조조정을 주저하게 한다. 최근 중국과 유럽 석화 업체의 가동률 조정으로 에틸렌 스프레드가 상승하는 등 일부 업황 개선 조짐이 있는데 먼저 설비를 철거하면 수혜는커녕 피해만 입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중국의 증설 기조는 향후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범용 석화 제품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당초 민간에 맡기면 빅딜은 어렵다며 조선업처럼 구조조정을 주도하려던 정부는 ‘선(先)자구 노력, 후(後) 지원’ 원칙을 고수하며 한 발 물러서 있다. 업계의 노력이 먼저라는 주장은 당연하지만 기업들의 과감한 결단을 이끌 마중물이 절실한 것은 정부도 안다. 석화 구조조정시 세제 지원책과 기업 결합 심사의 완화 등 지원책이 윤곽을 드러낼 때가 됐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근 울산을 다녀간 후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에쓰오일 3사가 잡은 손이 앞선 사례처럼 허무하게 종적을 감추지 않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