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에 따른 경영권 리스크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과 함께 사실상 해소 국면에 들어섰다. 대법원이 2심의 재산 분할 결정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며 다시 심리하도록 판결해 1조 3000억 원이 넘었던 최 회장의 재산분할 액수는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SK그룹의 지배구조 역시 안정을 찾으며 최 회장이 구상하는 인공지능(AI) 확산과 사업 재편이 탄력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2심 결과를 파기하면서 그룹 지주사인 SK㈜의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특수관계인을 포함하면 우호 지분은 약 25%에 달한다. 재계에서는 2심 당시 재산 분할 액수(1조 3808억 원)가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최 회장 지분의 일부 매각 또는 추가 담보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 회장 지분이 더 줄어든다면 자칫 과거 ‘소버린 사태’처럼 외부 적대 세력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재산 분할 규모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최 회장의 지분 매각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 SK㈜는 SK하이닉스(000660)·SK이노베이션(096770)·SK텔레콤(017670)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는 그룹의 중심인 만큼 최 회장 지분이 줄면 그룹 지배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재산 분할 액수가 줄어들면 최 회장은 보유 현금과 향후 확보할 배당금 등으로 이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판결로 지배구조 리스크에서 벗어난 SK그룹의 투자 시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최 회장은 그간 AI 대전환을 강조하며 AI를 중심으로 반도체와 배터리·에너지 등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오픈AI와 협력을 확대하면서 ‘AI 메모리 1위’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고, 배터리 부문에서는 SK온이 미국 조지아 공장 2단계 완공 등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테라파워와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SK텔레콤은 데이터센터 투자 등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개인적 고비를 넘긴 최 회장은 관세 리스크와 공급망 문제 등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대응에 보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미국 출국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면서도 “어려운 경제 현안들이 많은데 최선을 다해 우리 경제에 기여가 되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17일(현지 시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장 격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글로벌 빅샷들과 AI 인프라 투자 등을 논의한다.
최 회장은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함께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물밑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에는 28~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CEO 서밋’ 의장을 맡아 글로벌 기업간 AI·반도체·에너지·바이오 협력 등을 주도한다. 다음 달 3~4일에는 SK가 주관하는 AI 서밋에 참석하고 6~8일에는 그룹 최대 경영회의인 ‘CEO 세미나’에서 미래 사업 방향을 협의하는 숨 가쁜 행보가 예고돼 있다. SK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했다는 오해가 해소된 만큼 구성원들의 명예와 긍지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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