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프리미엄 브랜드 뷰익의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엔비스타’의 국내 출시를 검토한다. 심각한 내수 부진과 미국 관세 등 대내외 악재로 ‘한국 철수설’이 끊이지 않자 3000만 원대 ‘가성비’ 모델을 판매 라인업에 추가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GM이 엔비스타를 국내에 선보이게 되면 뷰익의 한국 공략 ‘1호 모델’로서 현대차 투싼·기아 스포티지 등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 노사는 올해 4분기 미래발전위원회를 열고 수출 차종인 엔비스타 국내 출시를 논의하기로 했다. 양 측은 이와 관련해 별도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향후 구체적인 의제 등을 발굴하는 데 뜻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TFT에서 엔비스타의 국내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보고 본사 협의를 거쳐 출시 여부나 일정, 생산 계획 등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GM의 엔비스타 출시 검토는 고꾸라진 내수 시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생존 전략에서 시작됐다. 한국GM은 장기간 신차 부재 등 여파로 지난달 국내 판매량 1231대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월보다 37.1% 감소한 실적이다. 한국 GM의 국내 판매량은 올 들어 9월까지 누적 기준으로도 38.7% 급감한 1만 1785대에 불과했다.
한국GM은 그동안 판매 반등을 견인할 신규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지난해 2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쉐보레의 전기 SUV ‘이쿼녹스EV’ 출시 계획을 밝혔지만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의 전기 SUV 리릭은 지난해 5월 국내 판매를 시작했으나 1억 원을 웃도는 비싼 가격으로 인해 고객 선택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엔비스타는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삼아 SUV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차량은 2023년 6월부터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생산돼 전량 북미로 수출되는데 현지 판매가격은 2만 4600달러(약 3505만 원)부터 시작된다. 국내 시장에 판매할 경우 늘어난 관세 비용과 물류비 등을 절감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공급 가능한 여력을 확보하게 된다. 엔비스타와 비슷한 차급의 국내산 SUV는 현대차·기아의 투싼·스포티지와 KG모빌리티의 토레스 등이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이 엔비스타 국내 생산·판매로 반복되는 철수설에 대한 정면 돌파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GM은 2018년 우리 정부로부터 8100억 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10년 사업 유지’를 약속한 바 있다. 2027년 말로 예정된 기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내수 부진, 관세 부담 등 악재가 겹치자 국내 철수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미 수출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한국GM은 미국 정부의 25% 관세 부과로 올 2분기 5억 5000만 달러(약 7600억 원)을 부담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엔비스타를 미국으로 수출하지 않고 자체 소화할 경우 관세 부담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GM은 앞서 운전자 개입 없는 자율주행 보조 기술인 ‘슈퍼크루즈’의 국내 도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철수 우려를 불식 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회사 측은 아직까지 해당 기술을 적용할 첫 번째 모델이나 도입 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슈퍼크루즈 같은 첨단 기술의 국내 도입은 긍정적이지만 단편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며 “국내 시장에 대한 GM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신차 배정과 생산 물량 확대 등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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