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중 무역 전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한화오션의 미국 현지 투자만 겨냥했지만 향후 미중 갈등 진행 상황에 따라 국내 조선업 전반을 대상으로 초강력 제재 조치가 따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14일 “미국이 중국에 대해 취한 해사·물류·조선업 관련 무역법 301조 조사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한화오션 5개 미국 자회사에 대한 반격 조치 채택 결정을 공표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은 한화쉬핑을 비롯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한화쉬핑홀딩스, HS USA홀딩스 등이다.
중국 측이 지목한 이번 조치를 취하게 된 표면적 이유는 중국 선박에 항만세를 부과한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조치는 국제법과 국제 관계 기본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면서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는 미국 정부의 조사를 지원하고 지지함으로써 중국의 주권·안보, 그리고 발전 이익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날 새벽부터 미국이 부과하는 항만세와 같은 성격의 특별 입항료 부과하겠다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다만 중국의 속내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견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미 중국은 한미 조선 협력 움직임을 두고 자국 조선업과 해군력을 겨냥한 움직임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마스가를 “위험한 도박”이라고 규정했고 “한국 배가 미군 작전에 쓰일 경우 한국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중국군과의 충돌 가능성을 공공연히 언급한 바 있다.
조선업은 중국이 공급량의 90%를 쥐고 있는 희토류 못지않은 미국의 취약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1910척 중 미국의 수주 물량은 2척에 불과했다. 사실상 조선업의 불모지인 셈이다. 미국은 자체 상선을 확보할 능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 세계 최강으로 여겨지는 미 해군력을 유지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개정해가며 미국 조선업 부활을 시도하는 배경에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반대로 중국으로서는 안보전략 차원에서 미국 조선업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에 선박 건조와 해상 물류 영역에서 중국이 가진 막대한 공급 능력을 무기로 미국의 조선업 재건 시도를 가로막겠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화 필리조선소는 한화가 1억 달러를 들여 매입한 뒤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곳으로 한미 마스가 협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공세라기 보단 ‘1단계 경고’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날 가해진 제재만으로는 한화오션의 영업 활동에 실질적 피해가 나타나지는 않아서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필리조선소는 아직 대형 선박을 건조할 역량을 갖추지 못해 중국 기업과 직접 거래를 할 일이 없다”며 “당장 한국을 때린다기보다 미국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중국 내 사업 비중이 크지 않으면서도 한미 협력의 상징으로 통하는 한화오션을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며 “한화가 방위산업체라는 것 또한 목표 설정의 배경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계 선박을 대상으로 순톤당 50달러(약 7만 2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한 날에 맞춰 중국이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400위안, 약 8만 원)의 상응 조치를 한 것도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은 미중 정상회담 전까지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더 격화하는 시나리오로 흘러갈 때다. 중국이 제재의 수위를 높이면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미국 조선소는 재건에 필요한 선박을 수주하는 단계부터 막힐 수 있다. 전 세계 해운 노선의 상당 부분이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기준 중국 항만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3억 1034만 TEU로 전 세계 항만이 처리한 물량(8억 5820만 TEU)의 36%에 달했다.
게다가 해운 물류는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 주요 항만에 화물을 모은 뒤 장거리 항해하는 컨테이너선에 환적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부산에서 출발해 유럽을 가는 화물선에도 중국발 화물이 상당히 적재된다는 이야기다. 동북아시아~북미, 동북아~유럽을 잇는 노선에서는 중국 화주의 영향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중국이 제재 대상 조선소에서 건조된 선박과의 거래까지 금지하면 미국산 선박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용 가치가 급락하게 되는 구조다.
국내 조선 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은 물론 향후 한미 조선 협력에 가담하는 업체들이 중국의 제재 범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16년 미중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당시 유통·소매 업계가 영업정지·세무조사 등 강력한 보복 조치에 시달리며 수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던 일이 조선업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한국 조선사에 대한 후판 공급을 막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에는 중국산 후판이 한국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지만 최근에는 품질 수준이 크게 올라와 업체에 따라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가량을 중국산 후판으로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중국이 후판 수출을 전면 금지할 경우 급격한 비용 상승 및 물량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박 전체 건조 비용 가운데 후판 비용은 20% 안팎에 이른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마스가는 사실 단순한 경제협력이 아니라 안보 문제까지 걸린 양국 핵심 협력 과제”라며 “이를 가장 크게 돕는 곳이 한화이다 보니 1차 타깃이 된 것 같고 HD현대와 삼성중공업 등 국내 다른 조선 업체로까지 이 같은 제재가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제재 조치가 국내 조선 업계 전반으로 번질 경우 타격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중 통상 채널을 가동해 소통하고 대응 중”이라며 “추가 제재 가능성은 예단하기 어려우나 계속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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