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쇼크 등으로 경영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긴급경영안정자금’ 집행률이 5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속한 지원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숨통을 틔우겠다던 정책 취지와 달리 까다로운 지원 조건 탓에 수요 기업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그림의 떡’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관세 피해 등에 대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올해 5~8월 지원 내역을 보면 집행액은 4개월 동안 1337억 원에 그쳤다. 정부가 미국발 통상 리스크에 대응한다며 추경을 통해 긴급 편성한 3000억 원 중 실제 집행률은 44.56%에 머문 셈이다.
긴급경영안정자금은 환율·보호무역으로 경영애로를 겪는 기업에 긴급 자금을 지원해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1~8월 업종별 지원 실적을 보면 미국 정부가 관세를 부과한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이 1458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도소매업 254억 원, 서비스업 86억 원 순이었다.
중기부는 5월 1일 긴급경영자금 3000억 원을 추가 경정을 통해 반영하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타격을 입는 중소기업에 신속히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현장의 절박함과는 달리 자금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부의 ‘긴급 자금’이 평상시 정책 자금과 유사한 높은 문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관세 충격을 직격탄으로 맞은 기업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원 요건을 보면 신용등급과 담보물 등 대출 심사 기준 역시 그대로 적용된다.
경북 칠곡의 한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관세로 인해 갑작스럽게 거래처 발주가 끊기거나 지연되는 상황인데 일반 대출 심사기준이 적용되면 어려움이 크다”며 “업계에서도 정책 자금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 지원을 했거나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관세 충격으로 이미 경영 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은 대출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커 자금 지원 신청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대개 은행에서 대출을 최대한 받아둔 상태"라며 "신용등급이나 담보물 등 일반 대출 심사 기준을 적용하면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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