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중 철강 감산 및 설비 조정 계획을 포함하는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는다. 중국발 공급과잉 속에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무관세 쿼터(할당량)를 축소하고 품목관세를 대폭 상향하는 등 철강 장벽을 높이자 정부도 대응에 나선 것이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9일 현대제철의 수출용 형강이 적재된 인천항을 방문해 철강 수출 현장을 점검한 뒤 “이달 중 관계부처 합동으로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방안에는 글로벌 공급과잉과 관련한 품목별 대응 방향 정립, 불공정 수입에 대한 통상 방어 강화 등이 종합적으로 담길 예정이다.
정부가 올해 3월 1차 철강 산업 대책을 내놓은 지 7개월 만에 ‘더 센’ 대책을 예고한 것은 국내 기업들이 생존 위기에 몰려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철강 산업은 현재 미국의 50% 품목관세에 더해 중국발(發) 공급과잉과 국내 건설 경기 위축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대책에 철강 제품의 생산 자체를 줄이는 감산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범용재 철강 제품의 생산을 줄이고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을 중심으로 철강 산업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설비 조정 및 감산 방안 등도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9일 “앞서 석유화학 산업구조 개편 방향을 발표하며 하나의 프레임을 만든 만큼 이를 철강·기계 등 다른 산업에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8월 말 △과잉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석유화학 산업구조 개편 3대 방향을 밝힌 바 있는데 철강 산업에도 이와 유사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셈이다.
철강 업계 역시 철근·형강·후판·강판 등 범용재 중심의 감산은 일정 부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범용재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질적 우위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데다 주요국의 보호무역 조치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에 384억 4800만 달러(약 55조 원)였던 철강 제품 수출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1~8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한 207억 200만 달러(약 29조 원)에 그쳤다. 이에 지난해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1973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초 중국은 철강 감산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2년간 철강 산업 성장률을 연평균 4%로 설정해 연착륙에 나선 상태다.
우리나라의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일제히 관세·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감산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기준 철강 수출 비중이 13.5%로 가장 많았던 EU는 연간 철강 쿼터 총량을 기존 대비 47% 줄이는 동시에 쿼터 밖 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 도입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국내 철강 제품의 2위 수출국인 미국은 철강 및 그 파생상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5위 수출국인 인도 역시 올해 4월 ‘2025 국산 철강 제품 정책’을 발표하고 최소 5년간 모든 공공 사업에서 50만 루피(약 844만 원)를 초과하는 철강을 조달할 경우 반드시 인도산 철강 제품을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정부는 철강 업계에 인위적인 고로·전기로 폐쇄와 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내에서 자체적인 감산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고 고부가가치 전환을 서두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문 차관은 “철강 기업, 금융권, 정책금융기관이 함께해 약 4000억 원 규모의 지원 효과를 낼 수 있는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 상품’을 신설하겠다”며 “이외 철강 수출기업들의 애로 해소 방안들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계는 EU의 신규 TRQ 도입 계획에 따른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EU와의 개별 협상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무역협회 측은 “EU의 쿼터 축소 대상 품목들은 한국의 대(對)EU 철강 수출 중에서도 55%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자유무역협정(FTA)에 규정된 협의·분쟁 해결 절차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EU TRQ 조치에 대해 우리 측 입장과 우려를 적극 개진할 것”이라며 “양자 협의 등을 통해 우리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