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10년 전 대우증권을 인수한 직후 미래에셋을 일본 노무라와 경쟁할 정도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1일 ‘미래에셋그룹 운용자산(AUM) 1000조 원 돌파’ 기념행사에서 그는 “1000조 원은 노무라그룹도 넘어서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시아 1등 지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노무라는 미래에셋그룹과 한국금융지주 등 비은행 금융지주사 오너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해외로 향하는 자국 투자자들을 어떻게 지원할지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갔던 노무라증권의 사례는 박 회장에게도 일종의 롤모델과 같았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과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역시 지난달 채용 설명회에서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노무라증권을) 잡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노무라홀딩스는 노무라증권을 핵심 자회사로 하는 노무라금융그룹의 지주회사로 올 6월 말 기준 AUM은 6460억 달러(약 907조 원)다. 최근 가파르게 실적이 성장한 배경에는 해외 기반의 기업금융이 핵심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노무라홀딩스의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노무라홀딩스는 지난해(2024년 3월~2025년 3월) 1조 8925억 엔(약 17조 6158억 원)의 영업수익(금융 비용 공제)을 올렸다. 전년 대비 21% 늘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3407억 엔(약 3조 1721억 원)으로 집계됐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국내 증권사들이 넘지 못할 벽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 상반기 1조 252억 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반기 순이익 1조 돌파 기록을 썼다. 미래에셋증권도 올해 순이익이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증권업의 수익 기반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극명하다. 노무라홀딩스의 영업수익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수합병(M&A) 자문, 주식자본시장(ECM) 및 부채자본시장(DCM) 자본 공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IB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금융 부문의 비중이 약 55.9%(1조 579억 엔)로 가장 컸다. 반면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올 상반기 기업금융 부문 수익 비중은 각각 4.1%, 1.7%에 불과하다.
주목할 점은 노무라홀딩스의 경우 기업금융 수익의 약 72%가 해외에서 창출됐다는 점이다. 노무라홀딩스는 1925년 노무라증권으로 탄생한 후 2년 만인 1927년 뉴욕에 사무소를 세우며 일찌감치 해외 진출에 나섰고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곧바로 리먼 아시아·중동·유럽 부문을 인수하기도 했다. 노무라홀딩스 기업금융 부문은 2020년부터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운용 등을 돕기 위한 ‘해외 부유층 비즈니스’도 개시했는데 그간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에 힘입어 지난해 고객 AUM이 전년 대비 약 95% 늘어난 290억 달러(약 41조 원)로 집계됐다.
이 외에 개인 고객 중심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WM 부문(4515억 엔)과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펀드·대체투자 상품을 개발·운용하는 투자관리 부문(1925억 엔)이 노무라홀딩스 전체 수익에서 각각 23.86%, 10.2%의 비중을 차지했다. 자산관리 부문 중 중개 수수료 수익에 해당하는 ‘플로 수익’은 전체의 13% 수준에 그쳤다.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개인 거래(리테일)에 수익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된다.
결국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궁극적으로 노무라홀딩스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주식 중개 수익 비중은 줄이고 IB 역할을 강화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IB로의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종합투자계좌(IMA) 인가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노무라홀딩스와 같이 기업금융 중심 증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출자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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