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년부터 국내 국제선 항공편에 대해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정유사와 항공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SAF는 차세대 친환경 연료로 꼽히지만, 수조 원에 달하는 투자와 항공권 인상 요인이 뒤따르면서 속도 조절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9일 ‘SAF 혼합 의무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7년 혼합률 1%를 시작으로 2030년에는 3~5%, 2035년에는 최대 1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SAF는 폐식용유, 바이오매스 등 재생자원으로 만든 친환경 항공유다. 유럽연합(EU)은 올해 2%를 시작으로 2050년 7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영국도 2030년까지 10%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역시 2030년까지 SAF 도입으로 전 세계 항공부문 탄소 배출을 5%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도 SAF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사업 전환에 나서고 있다. SK에너지는 울산콤플렉스에 약 150억 원을 투자해 SAF 코프로세싱 설비를 구축하고 연 10만 톤 규모의 저탄소 제품을 생산해 유럽에 수출했다. GS칼텍스는 네스테(Neste)와 손잡고 일본 나리타공항에 SAF를 공급했으며, HD현대오일뱅크는 일본 ANA항공에 SAF를 수출했다. 에쓰오일도 폐식용유를 활용한 저탄소 제품 생산을 시작하고 국제 탄소감축제도(CORSIA) 인증을 확보해 항공사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는 본격적인 혼합률 확대를 맞추려면 전용 플랜트 건설이 불가피해 수조 원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SAF는 분명 미래 먹거리지만, 적자가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단기간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정유업계는 정유 부문 손실과 석유화학 불황이 겹치며 올해 상반기 정유 부문에서만 1조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항공사들도 비용 증가를 우려한다.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2~3배 비싸다. 국토부는 혼합률 1%만 적용해도 국내 항공사 전체 비용이 연간 92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한 대형 항공사는 유럽 노선에 SAF를 도입하면서 연간 299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업계는 “정부 보조금이 한시적으로 지원되더라도 결국 항공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업계는 초기 투자 비용과 원료 수급 문제 등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SAF를 사용하는 항공사에 일반 항공유 대비 가격 차액만큼 배출권을 부여한다. 미국은 SAF 생산 기업에 갤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일본도 SAF 시설 투자나 판매 관련 비용의 최대 40%를 법인세에서 공제해 주고 있다. 정유업계는 “국내도 유사한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투자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원료 수급도 문제다. SAF 원료인 폐식용유는 글로벌시장에서 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이 최근 중국산 폐식용유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수급 상황은 더 악화됐고 가격은 전년 대비 약 50% 상승할 정도까지 수급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폐식용유를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 국내 SAF 확대를 위해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시급하며 국내 폐식용유도 수출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유사들은 항공사들의 해외 의존 가능성도 문제로 꼽는다. 항공사가 해외산 SAF을 사용하게 되면 국내 생산 기반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항공사에 일정 비율 이상 국산 SAF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SAF 확대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과 정부 지원, 원료 공급망 안정, 국내 소비 기반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산업 차원의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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