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에서 사실상 연대보증과 다름없는 불합리한 계약 관행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신기술금융사에 대한 규제 공백이 창업자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추가적인 입법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 2022년 개정된 ‘벤처투자 촉진법’ 시행령은 창업투자회사와 벤처투자조합이 투자 계약 시 창업자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지울 수 없도록 명확히 규정했다. 이는 창업가들의 부담을 덜고 건강한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변화다.
하지만 금융위원회 소관의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아직 개정되지 않아 산업은행, IBK캐피탈, 신한캐피탈 등 신기사는 여전히 창업가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신기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약 2조 7000억 원 수준의 벤처투자를 집행하며 창업투자회사와 맞먹는 막대한 투자 비중을 보였다. 이처럼 벤처 투자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신기사에 대한 규제 공백은 창업가에게 불필요한 위험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벤처업계는 신기술금융업자 역시 창업투자회사와 동일하게 연대보증 금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강한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모든 투자 주체에 공정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일각에서는 창업가의 고의나 중과실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인 책임 추궁이 가능해야 한다는 보완책도 제기된다. 구체적으로는 △허위자료 제출 △자금 사용 목적 위반 △지분 불법 처분 등 악의적인 행위가 확인될 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신기사에 대한 규제 공백을 해소하는 노력이 존재한다. 김종민 무소속 의원은 창업자에게 과도한 연대보증을 지우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장치를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신기술사업금융업자 또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에게도 신기술사업자가 부담하여야 하는 의무를 고의 또는 중과실로 투자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지울 수 없도록 하여 벤처기업을 보호하고 규제차익을 해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업계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연대 책임을 묻는 행위가 사라지려면 제 3자 연대책임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법에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환매청구권(원금 회수 보장 목적) △총수익보장 약정 △풋옵션을 결합한 경제적 손실 보전 요구 등은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실제 현장에서는 대출 연체 등이 발생하면 기한 이익 상실을 주장하거나 피투자사의 기업회생 신청 등을 문제 삼아 투자사가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다. 연대 책임이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실정을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입법 노력이 요구되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벤처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신기사에 대한 명확하고 실효성 있는 추가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는 “연대 보증이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실질적으로 연대 책임에 해당하는 행위가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적용되는 점을 고려해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며 “창업자에게 과도한 경영상 책임을 묻는 실태를 고려해 중대 과실에 해당하는 사유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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