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입니다”
29일 이규석 현대모비스(012330) 사장이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바이 힐튼 판교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현대모비스 차량용 반도체 포럼(ASK, Auto Semicon Korea)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은 대신에 한 번 정착하게 되면 지속적인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포럼은 국내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태계 확장을 위해 개최됐다. 국내 완성차와 팹리스, 파운드리, 디자인하우스, 패키징, 설계 툴 전문사 등 23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했다. 삼성전자, LX세미콘, SK키파운드리, DB하이텍, 글로벌테크놀로지, 동운아나텍, 한국전기연구원 등이 참가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민간이 주도해 차량용 반도체 산업에 공동 대응을 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차량용 반도체 분야는 미국·유럽·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8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다. 국내 업체 점유율은 3~4%에 불과하다. 2021년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등이 겹치면서 ’반도체 대란‘이 발생했던 원인으로, 국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밸류체인을 형성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주요 기업들과 함께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도할 계획이다. 그간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개발 과정이 길고 품질 인증 절차가 엄격하다는 단점에 비해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는 우선 현대차·기아와 차량용 반도체 표준화·공용화 작업을 진행한다. 차량용 반도체 하나당 판매 볼륨을 키워 관련 기업들이 시장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다. 아울러 가전 등에 탑재됐던 기존 반도체를 차량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이규석 사장은 "독자적 반도체 설계 역량 확보하는 동시에 팹리스 및 디자인 하우스와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주요 파운드리와도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현재 5% 이하인 반도체 국산화율을 2030년 10% 이상으로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성과도 이미 나오고 있다. 현재 현대모비스는 국내 반도체 업체와 협력해 차량용 반도체 10종에 대해 공동으로 개발해 이르면 내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이 사장은 “올해 포럼에 참석한 팹리스 회사별로 차량용 반도체 2~3가지 정도의 프로젝트를 시작해 성과를 내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좌우하는 전력반도체와 핵심부품을 통합 개발하면 이를 개별적으로 개발할 때보다 최대 2년가량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로보틱스 분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로봇에는 인공지능 시스템, 센싱, 바디 액츄에이터 등 다양한 반도체가 필요한데, 유사한 기능을 가진 차량용 반도체가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철홍 현대모비스 전무는 “차량용 반도체의 높은 품질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로보틱스는 물론 미래 모빌리티 전 사업분야로의 진출도 용이하다”며 “결국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 제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차 확산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연평균 9%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는 2030년에는 약 1380억 달러(약 200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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