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처럼 상황에 맞게 특정 자극에 더 예민해지거나 둔해지는 적응력을 갖춘 반도체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한층 더 뇌를 닮은 정보처리 방식으로 기존 대비 에너지 소모를 28% 줄일 수 있어 저전력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로 응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김경민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뇌 신경세포인 뉴런의 내재적 가소성을 모방한 ‘주파수 스위칭 뉴리스터’를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연구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지난달 18일 게재됐다.
내재적 가소성은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 점점 무뎌져 덜 놀라거나 반대로 반복된 훈련을 통해 특정 자극에 예민해져 빨리 반응할 수 있게 되는 뇌의 적응 능력을 말한다. 사람의 뇌는 단순히 뉴런끼리 연결돼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넘어 이 같은 내재적 가소성을 통해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뇌를 모방한 반도체 소자(素子)가 개발되고 있지만 내재적 가소성까지 제대로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주파수 스위칭 뉴리스터는 내재적 가소성을 구현해 신호의 빈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자다. 연구팀은 순간적으로 반응했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휘발성 모트 멤리스터’와 입력 신호의 흔적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비휘발성 멤리스터’를 결합해 신호를 얼마나 자주 내보낼지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소자를 구현했다. 이 소자는 뉴런 스파이크 신호와 멤리스터 저항 변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동으로 반응을 조절한다.
연구팀은 이 소자가 기존 신경망보다 에너지 소모를 27.7% 줄이면서도 동일한 성능을 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일부 뉴런이 손상되더라도 내재적 가소성을 통해 네트워크가 스스로 재구성되어 성능을 회복하는 복원력도 입증했다. 이 기술을 적용한 AI는 전기를 덜 쓰면서도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일부 회로가 고장 나도 스스로 보완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뇌의 핵심 기능인 내재적 가소성을 단일 반도체 소자로 구현해 인공지능 하드웨어의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한 차원 높인 성과”라며 “스스로 상태를 기억하고 손상에도 적응·복구할 수 있는 이번 기술은 엣지 컴퓨팅, 자율주행 등 장시간 안정성이 요구되는 시스템의 핵심 소자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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