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 슈퍼사이클(호황기)’에 올라타며 한국 최대 기업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열풍으로 D램 가격이 계속 오르고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도 잇따라 대형 공급계약을 터트리며 실적을 밀어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1년여 만에 분기 영업익 ‘10조 클럽’에 복귀하는 한편 실적 성장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HBM4(6세대) 양산 체제 구축을 완료하고 이르면 올해 말 고객사에 납품하기 위한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분기까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HBM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HBM 사업에서 체면을 구긴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9조 1800억 원으로 10조 원 밑으로 떨어진 데 이어 올 2분기에는 4조 7000억 원까지 후퇴했다. 2분기 반도체 사업을 하는 DS부문 영업이익이 4000억 원까지 추락한 탓에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반토막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의 HBM3E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업계 관계자는 “HBM3E의 발열 문제가 해소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면서 “HBM3E에 이어 HBM4 공급도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D램 평균 판매 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제품당 가격이 500달러(약 70만 원) 수준인 HBM4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경우 영업이익 개선 폭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파운드리 사업은 8월 장기 미국 출장을 마치고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내년 사업을 준비하고 왔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고 있다.
이 회장의 미국 방문 직전인 7월 말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의 차세대 칩 ‘AI6’를 생산하는 약 23조 원의 계약을 체결했고, 8월에는 스마트폰의 눈으로 불리는 이미지센서를 애플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또 이달 19일에는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선도 기업 중 한 곳인 IBM의 차세대 데이터센터용 칩 ‘파워11’ 위탁 생산 계약까지 수주한 사실이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직접 맡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600’의 양산이 임박한 점도 호재다. 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면 내년 출시될 차세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6의 전 모델에 엑시노스 2600이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 자체 칩을 사용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원가를 낮출 수 있고 칩을 조립하는 파운드리 사업도 물량 확보가 가능해진다. 엑시노스 2600의 양산이 이뤄지면 발열 문제로 2022년 이후 주문 생산을 맡기지 않았던 퀄컴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반도체 위탁 생산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분기에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이 호황 초입에 들어서면서 3분기 영업이익이 1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분기 이후 5개 분기 만에 영업익 ‘10조 클럽’에 복귀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을 포함한 반도체 사업의 분위기가 달라지며 실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을 예측하며 목표주가를 잇따라 10만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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