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국내 금 투자 열풍도 거세지고 있다. 은행권 골드뱅킹 잔액은 처음으로 1조2000억 원을 넘어섰고, 골드바 판매액은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이달 11일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1조236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1조1393억 원)보다 불과 11일 만에 974억 원 늘어난 규모다. 올해 들어서만 4545억 원이 증가했다.
골드뱅킹은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팔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2023년까지 5000억∼6000억 원대를 유지하던 잔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늘며 올해 3월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4월 말 1조1025억 원까지 오른 뒤 잠시 숨 고르기를 했으나, 이달 들어 다시 1조2000억 원 선을 넘겼다.
국제 금값은 지난주 현물 기준 온스당 36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금 가격도 상승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금시장에서 이달 12일 1㎏짜리 금 현물은 g당 16만5100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말보다 29.1% 오른 수준이며 지난 9일에는 16만7740원까지 치솟아 올해 2월 고점(16만8500원)에 근접했다.
골드바 실물 투자 열기도 뜨겁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이달 1∼11일 373억 원을 기록, 불과 열흘 만에 지난 8월 전체 판매액(373억7500만 원)에 맞먹는 수준에 도달했다.
올해 누적 골드바 판매액은 약 3628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판매액(1654억 원)의 2.2배에 달한다. 2월에는 품귀 현상으로 판매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이달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당시 기록(882억9300만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금 인기에 힘입어 은 투자도 각광받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 등 4대 은행의 실버바 판매액은 지난 8월 10억5900만 원으로, 사상 처음 월 1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누적 실버바 판매액은 49억8100만 원으로 지난해 전체(8억 원)의 6배 이상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금값 상승 배경으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꼽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 정책,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 압박, 달러 약세, 미 국채 매도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안전자산으로서 금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로버트 멀린 마라톤 리소스 어드바이저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금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에 맞서는 헤지 수단 역할을 해왔다”며 “투자자들은 정부의 재정 적자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의지에 대한 우려 속에서 금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 카르멘 라인하트 역시 “금 수요 확대는 인플레이션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반영한 결과”라며 “금은 불확실성이 클 때 항상 인기가 높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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