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해외주식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기업의 초과수익 창출을 위한 시장가치 제고를 우선시하면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책임투자 원칙과의 균형을 고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약 1년간 최소 46개의 해외 기업 연례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43개로 국민연금은 전체 385개 안건 중 93건(24.2%)에 대해 반대 혹은 일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사회가 제출한 293개 안건 중에서는 268건(91.5%)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경영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사외이사 장기 연임, 과도한 임원 보수, 주총 전자화 등 주주 권익이나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에는 제동을 걸었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출석률이 낮다는 이유로 반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정치·이념적 색채가 강하거나 기업 경영에 과도한 개입 우려가 있는 주주제안에는 대체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주총에서는 군사용 제품 개발 현황 보고, 인권 침해국 대상 데이터 사업 보고 등 5개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애플과 알파벳 주총에서도 인공지능(AI) 데이터의 윤리적 활용, 기부금 정보 보고, 기후목표 공시 등 대다수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근 1년 동안 주주제안 의안을 주총에 상정한 26개사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총 92건 중 68건(73.9%)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주주제안 중 사생활 보호, 혐오 발언, 개인정보 보호 등 최근 추세를 고려할 때 자정 노력을 강화하는 게 장기적인 기업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 주총에서는 아동 안전, 데이터 사용 감독, 딥페이크 대응 등 7건의 주주제안에 이례적으로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선 관련 안건에서도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아마존)',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JP모건, 홈디포)' 등에는 경영진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모습이었다.
업계에선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진에 신뢰를 주면서도, ESG 책임투자 관점에서 투자자들과 손을 잡아 주주 권익과 수익성 확보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기금으로서 수익 극대화를 최우선시하되 지속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는 기조와 일치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올 7월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기금운용의 최일선의 목적은 성과와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ESG 책임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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