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업계 간 임대료 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배임’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항 측은 임대료 인하가 자사의 수익을 포기하는 행위로, 배임 소지가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법원은 기업 생존을 위한 전략적 결정을 폭넓게 인정해온 만큼, 이번 사안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경우 어떤 판결이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4월 인천공항을 상대로 임대료 40% 인하를 요구하며 인천지방법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항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항 측은 임대료를 낮추는 것은 공사가 확보해야 할 수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곧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은 경영상의 합리적 판단에 대해서는 배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해온 사례가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3년, 부도 위기에 몰린 회사가 특수목적법인(SPC)에 공장과 설비를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장기 임대한 계약을 두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임대료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저가 임대를 통한 자금 확보는 회사 존립과 직원 생계를 위한 경영상 결단”이라고 판단했다.
수원지법도 지난해 부동산 개발 사업 과정에서 금융자문 수수료를 과다 지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사업 진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정치권 역시 배임죄 적용 범위 축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에는 경영상 판단에 대해 배임죄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형법·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경제점검회의에서 “배임죄 남용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모든 경영상 판단이 배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회사의 손해가 명백한데도 무리하게 투자한 사례(2004년 선고) △부실 계열사에 충분한 담보 없이 자금을 지원한 사례(2012년 선고) 등에 대해서는 배임을 인정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결국 인천공항 임대료 인하가 회사의 장기적 이익과 합치하는지 여부가 핵심”이라며 “법원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향후 분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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