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상법이 시행된 것과 맞물려 이사의 경영 판단 책임도 줄여주는 배임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개정 상법 시행으로 기업 현장에서는 주주에 대한 배임죄 여부나 경영 판단 원칙 적용 여부 등이 모호해 혼란이 있다”며 “합리적 경영 판단에 대한 면책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 의사 결정에 중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현행 배임죄의 문제로 실제 명확한 고의 외에 미필적 고의까지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는 모호한 구성 요건을 문제로 꼽았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을 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배임·횡령죄의 무죄율은 평균 6.7%로 형법 전체 범죄 평균(3.2%)보다 2배 이상 높다.
또 현행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죄에서 가중 처벌되는 이득액 기준은 1984년 제정 당시 ‘1억 원·10억 원’에서 1990년 ‘5억 원·50억 원’으로 한 차례 상향된 뒤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됐다. 상의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90년의 5억 원·50억 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억 원·150억 원에 달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 실패가 발생해도 경영자가 배임죄로 고소당한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인 간 민사 분쟁을 배임죄와 같은 형사로 해결하려거나 고소를 해 수사기관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민사소송 증거 확보나 협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에서 배임죄가 가장 무겁게 처벌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특경법상 배임을 통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기본 형량은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인데 미국과 영국은 이를 배임죄가 아닌 사기죄로 다루거나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한다. 독일과 일본은 배임죄가 있지만 특별법을 통해 가중처벌하지는 않는다.
이와 함께 경영 판단의 원칙을 상법, 형법 등에 명문화해 기소 단계부터 이사의 책임을 면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법이 강화된 만큼 경영 판단 의사 결정을 보호하는 제도가 균형 있게 마련돼야 한다”며 “국회에서도 배임죄 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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