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과 한국바이오협회가 110개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금난으로 연구개발(R&D)을 포기하려 했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자금난이 장기화하면서 K바이오 미래 경쟁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경제신문은 바이오 전문 투자자들을 연속 인터뷰해 K바이오가 위기를 이겨내고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들어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은 전무합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해외 자금을 끌어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규제 개선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필수 선행 조건입니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전무는 1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바이오가 수천 억 원에 달하는 임상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문 전무는 “신약 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을 거쳐 품목허가를 받기까지 대략 1조 원이 드는데,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한 국내 기업은 대기업인 SK바이오팜뿐”이라며 “임상 3상을 진행하려면 2000억~3000억 원의 현금이 필요하지만 국내에는 그 정도 현금을 보유한 기업은 없고, 그 정도 자금을 자본 시장에서 조달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내 자본 시장의 한계 속에서 제약·바이오 업계가 한 단계 성장하려면 해외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 문 전무의 시각이다. 그는 “글로벌 바이오 투자 자금은 일반 투자 자금과는 따로 움직이지만 한국 바이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자금을 K바이오가 유치하려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지배구조도 깔끔하게 만들고, 기업의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등 정부 당국이 구체적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업계의 ‘페인 포인트’로 꼽히는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규제’에 대해서는 규제 자체는 유지하되 평가 방법을 바이오 산업 특성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차손 규제란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이 자기자본 대비 법인세차감전순손실 비율을 5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5년의 유예 기간을 준 뒤 최근 3년간 2회 이상 법차손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상장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 업계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할수록 상장 폐지 위험이 높아진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문 전무는 이에 대해 “기술특례상장 제도 초기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 중 문제가 있는 기업들도 있기 때문에 법차손 요건이 잘못됐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상장 이후 성실하게 R&D에 임했는지 평가를 받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법차손 유예 종료 이후 한 번 더 유예를 받기 위해 한국거래소의 추가 심사를 거치거나, 유예 종료 이전에 기술이전 계약으로 100억 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았다면 유예를 인정해주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바이오 업계에서만 법차손 요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앞으로 인공지능(AI), 우주항공, 콘텐츠 등 기술특례상장 기업 대부분이 똑같은 문제를 겪을 게 분명하다”며 “정부가 지금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투자자 보호장치 약화 우려에 대해서는 “법차손 규정을 두는 것과 일반 투자자 보호 조치는 별개 문제”라며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 전무는 최근 자금시장이 선호하는 바이오 기업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목표가 명확한 회사에는 투자가 몰린다”며 “오름테라퓨틱처럼 ‘약이 없어 고통받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이를 위해 대표 본인이 사업개발(BD) 능력을 개발하고, 필요한 글로벌 인재 어떻게든 데려오는 기업들은 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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