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개발 중인 고대역폭메모리(HBM)4 전력 효율 개선폭을 기존 30%에서 40%로 상향했다. HBM4는 내년 본격 사용될 차세대 메모리로 엔비디아 ‘베라 루빈’ 등에 쓰일 예정이다. 인공지능(AI) 칩셋의 막대한 전력 소모가 데이터센터 인프라 비용 폭증을 이끄는 와중, 업계 최고 수준 전력 효율로 HBM4 시장까지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SK하이닉스는 5일(현지 시간) 미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메모리 전시회 ‘FMS(퓨처 메모리&스토리지) 2025’ 키노트에서 HBM4 전력 효율이 HBM3E보다 최대 40% 이상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GTC 2025 등 상반기 행사에서 HBM4 전력 효율 개선폭을 30%로 제시해왔다. HBM4 개발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며 당초 계획보다 전력소모량을 줄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이와 함께 HBM4 열 내성(특성)이 HBM3E보다 4%가량 높아진다고 밝혔다. 반도체는 작동 속도가 빨라질수록 전력 소모가 늘고 이에 따라 발열량도 높아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제 성능을 낼 수 없어 고열에도 견딜 수 있는 열 내성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발표에 나선 최준영 SK하이닉스 HBM 사업기획그룹 부사장은 “몇년 전 12%에 불과하던 HBM의 서버 내 소비 전력 비중이 현재 18%에 이른다”며 “전력 소모량을 줄이면 인프라 비용을 낮춰 고객에게 실제 시스템 수준에서의 이점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가 HBM4 전력 소모 개선폭을 끌어올린 배경에는 주 납품처인 엔비디아의 추가적인 요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올 3월 메모리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HBM4 샘플을 제공했다. 샘플 전달 시점까지 전력 소모 개선폭을 30%로 제시해왔으나 이후 40%로 목표치를 높인 셈이다.
실제 이날 SK하이닉스는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표준에 연연하지 않고 고객사 전용 ‘커스텀 HBM’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엔비디아는 JEDEC 표준과 관계 없이 고성능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부사장은 “‘단일 표준’으로는 오늘날 필요한 진화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일반적인 표준 HBM에서 각 고객사 맞춤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AI 인프라의 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제시한 ‘40% 이상’ 전력 소모 감소는 엔비디아향 HBM 경쟁사인 마이크론을 뛰어넘는 수치다. 마이크론은 이날 행사 키노트에서 HBM3E 대비 HBM4 전력 개선 목표치를 기존 발표와 같은 20%로 내놨다. 계획대로 양산이 이뤄진다면 다음 세대에서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주 납품사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엔비디아는 내년 출시할 ‘베라 루빈’ AI 가속기에 HBM4를 탑재할 계획이다. 현재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삼성전자(005930) 등 메모리 3사 샘플을 테스트하며 공급사 선정과 납품량 등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날 무대에 오른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마이크론 대비 높은 초당 2.4TB(테라바이트) 대역폭으로 HBM4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HBM4 대역폭은 초당 2TB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HBM4는 경쟁사보다 한 단계 앞선 6세대 10나노급 D램(1c)으로 제작된다. 또 2027~2028년을 목표로 개발하는 HBM4E는 HBM3E 대비 전력 효율을 2배 이상 높이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낸드플래시 신제품·신기술 공개도 이어졌다. FMS는 2023년까지 ‘플래시 메모리 서밋’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던 행사다. 각사는 차세대 통신 규격인 PCIe 6.0가 적용된 고속 저장장치를 잇달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AI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PM1763’을 내년 초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선보인 PM1753보다 읽기·쓰기 속도가 각각 2배, 1.6배, 전력효율이 1.6배 늘었다. 2017년 개발 소식을 알렸으나 본격적인 상용화에 이르지 않았던 Z낸드 기술을 부활시키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SK하이닉스 또한 PCIe 6.0 지원 SSD를 내년 말 공급하겠다고 했다.
마이크론은 클라우드저장장치최적화(CSO)라고 이름 붙인 ‘신 개념 낸드플래시’를 꺼내들었다. 제레미 워너 마이크론 코어데이터센터 비즈니스 부사장은 “CSO 낸드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마이크론과 계약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본 적 없을 제품으로 고용량 저장장치의 미래이자 변곡점”이라며 “구형 USB 저장장치를 위해 만들어진 TLC, QLC와 달리 데이터센터에 최적화한 낸드”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CSO 낸드의 구조와 개발 방식 등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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