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자동차 수리시 비용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부품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한 데서 한발 물러나 소비자가 원하면 순정 부품(OEM)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급하게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는 5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품질 인증 부품 사용에 관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안을 보면 당국은 소비자가 정품 수리를 요청하는 경우 이를 사용할 수 있게 선택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당초 금융 당국은 가격이 싼 품질 인증 부품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자동차보험표준약관을 16일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품질 인증 부품은 순정 부품보다 가격이 30~40%가량 낮다. 품질이 보장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품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자동차 보험료 상승 요인을 막고 보험사들의 손해율을 낮춘다는 게 금융 당국의 의도였다. 의무 보험인 자동차 보험이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차적으로 모든 차보험에 해당 내용이 적용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대체품을 이용할 경우 미묘한 성능 차이가 존재해 차량의 진동과 소음, 누유 등 여러 결함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생명과 관련된 일인데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불만도 많았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의 취지는 과도한 수리 비용을 절감해 자동차 보험 손해율을 낮추려는 목적이었지만 소비자 선택권 침해 문제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제도 자체를 정교하게 만들지 못했다”며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실제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당국은 기존 입장을 바꾸게 됐다. 보험 보상 기준도 정품 가격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초과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상 기존 보상 구조로 돌아간 셈이다. 금융위는 “품질 인증 부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고 부품 수급이 원활해지기 전까지는 소비자가 요청할 경우 특약(무료·자동가입)을 통해 순정품으로만 수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당국은 출고 후 5년이 안 된 신차와 외장 부품이 아닌 주요 부품 등에 대해서는 순정품만 쓰게 할 예정이다. 신차는 차주의 민감도가 높고 차량가액 감소에 대한 우려도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월 말 현재 출고 후 5년 이내 신차는 전체 차량의 30.6%를 차지한다.
외장 부품이 아닌 브레이크와 휠, 조향장치 등 안전과 관련이 있는 부품도 정품만 쓰도록 한다. 금융위는 “차량 운행과 관련이 적은 범퍼나 보닛, 펜더 등 외장 부품을 수리하는 경우에 한해 우선 적용하고 향후 확대 여부를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주가 정품이 아닌 대체부품을 사용하는 경우 정품 가격의 25%를 환급하도록 하는 기존 제도 역시 유지된다. 다만 대체 부품 사용 활성화를 위해 제도 적용 범위를 현행 자기차량손해 담보에서 대물배상 담보로까지 확대했다. 금융위는 “향후 정책 당국은 소비자의 차 부품에 대한 선택권을 고려하면서 소비자의 품질 인증 부품에 대한 신뢰도 확보 등을 통해 대체 부품 사용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며 “품질 인증 부품 인증 절차와 방식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자동차 보험료 인상 요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험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갑자기 당국이 뒤로 물러서니 업계 입장에서도 당황스럽고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자동차 보험료가 물가지수에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내놓은 정책이 무색해져 자동차 보험료 인상 요인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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