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자 놀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금융권을 비판한 이후 금융 당국이 2금융권과의 사회공헌 사업 검토에 착수했다. 밀려드는 각종 청구서에 부담이 커진 금융권은 4000억 원 규모의 배드뱅크 사업 분담금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는 상호금융기관, 여신금융협회, 손해·생명보험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2금융권 관계자들을 불러 상생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위 측은 이 자리에서 2금융권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회공헌 사업 기획을 제안했다. 금융위 측은 폭염을 비롯한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의 사회공헌 활동 압박에 2금융권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기류다. 올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쓴 시중은행들과 달리 카드사, 보험사, 저축은행들은 경기 부진, 규제 강화에 시달리며 수익성과 건전성 모두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미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확대, 100조 원 규모의 첨단·벤처·혁신기업 투자 펀드 조성 협력 등에 나선 상황에서 챙겨야 할 사업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2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특정 업권에 국한되지 않고 전 금융권이 공통으로 할 수 있는 공헌 사업을 모색하는 것 같다”며 “결국 이 사업도 일정 정도의 비용 출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의 개인 채무를 탕감해주는 배드뱅크 분담금 배분 비율을 둘러싼 논의는 한 달째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려 분담 비율을 놓고 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생명·손해보험협회 등 간의 신경전은 고조되는 양상이다.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자 각 협회들은 업권별 부실 채권 규모를 정확하게 조사한 뒤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 주도로 업권별 부실 채권 규모를 파악하는 상황”이라며 “정확한 통계를 받아본 뒤 부담 규모를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참여 주체를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도 새어 나온다. 당초 분담금을 모든 금융 업권이 분담하기로 했으나 정부가 주식 등 금융투자에 따른 채무는 매입 대상에서 빼기로 하면서 금융투자협회는 관련 논의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금투협이 불참할 경우 다른 업권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협회의 고위 관계자는 “금투협은 매각할 부실 채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취약층을 돕는다는 공익적 성격도 감안해야 한다”며 “여력이 있다면 역할 분담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 정권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올해 상반기 업황이 좋았던 증권사들이 적극 일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 금융회사들은 협상의 주체가 되는 소속 협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국가 재정의 여력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한계를 메워줄 금융의 역할이 절실하다”(7월 30일 보고서)고 밝힌 상황에서 각종 정권의 프로젝트에 동원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사업별 청구액을 최소화하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전세사기 배드뱅크 설립과 관련한 비용 부담 요구가 날아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사후적으로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라며 “회원사들의 압박에 금융 협회들 간 업권별 비용 분담 협상도 쉽게 결론 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