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분리 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 2차 상법 개정안이 본래 취지인 소액주주 보호보다는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 세계적인 기준과 동떨어진 제도일 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나 투기 자본 등 다른 목적을 가진 세력이 악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올해 4월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하자 “최대주주에 대한 역차별이고 적대적 인수합병(M&A)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해당 법안은 대안 반영 폐기됐으나 민주당은 집중투표제 등 반영되지 않은 제도를 모아 재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이사 2명 이상을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 각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가 원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이 쉬워진다. 대부분 기업들은 현행법에 따라 정관을 통해 이를 배제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시 대상 기업집단 80개 소속 상장사 344개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13개사(3.8%)에 불과하다.
이는 집중투표제가 2대 또는 3대 주주가 이사회 다수를 차지할 수 있어 자본 다수결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경영권을 공격하는 세력에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러시아·멕시코·칠레뿐이고 미국·일본 등은 강제했다가 경영 비효율 등의 부작용을 겪고 나서야 자율 규제로 전환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 지표 가운데 준수율이 가장 낮은 항목이 집중투표제인 것을 비춰보면 상장사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 제도인지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전원으로 확대하고 최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과 함께 집중투표제를 시행하면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욱 커진다.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되지만 외부 세력은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보호가 이뤄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회 작동을 막고 경영 정보를 유출해 기업 경쟁력만 깎아내릴 수 있다. 실제로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2019년 3월 현대차에 수소연료 사업 경쟁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사외이사로 추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해외 사례도 전무하다. 상장협 관계자는 “자본 기여량에 따라 권리와 책임을 부담하는 물적 회사에서 가장 크게 자본적 기여를 한 대주주 권리를 제한하는 건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더라도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기형적인 재산권 침해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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