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에 약국 문을 열고 저녁 11시에 닫았다. 하루 16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주변 약국보다 1시간 일찍 문을 열고 2시간 늦게 닫은 덕분에 단골이 늘기 시작했다. 12평 규모의 약국에서 하루 평균 환자 400명, 처방 및 조제 200건 이상을 하던 때(의약분업 이전 시기)도 있었다. 시골 장날에는 환자들이 몰리면 점심을 건너뛰거나 오후 늦게 저녁을 겸해 먹기 일쑤였다. 타고난 성실성과 겸손함,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진심을 담아 환자 한 명 한 명을 대했다.
김좌진(사진) 마더스제약 대표(회장)는 잘나가던 약사에서 약국 체인 대표를 거쳐 연 매출 2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 제약사를 일궜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은 한결같다. 그의 소명은 “환자를 위한 노력과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약국이나 약국 체인, 제약사는 의학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지켜가면서 (업무와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온 과정”이라며 “약대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남들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하고 저녁 늦게 마무리하는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약사를 하던 중 동료 약사들과 의기투합해 1993년 ‘베데스다’라는 약국 체인을 설립했다. 평소 김 대표의 성실하고 올곧은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약사들이 믿고 자금을 보탰다. 약국 체인을 운영하던 김 대표는 제약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통 구조로는 사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접 제약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다.
그는 “약국 체인 사업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쓰는 약들도 많아지는데 제약사에서 약을 공급받다 보니 필요한 약을 원하는 시간과 가격에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며 “직접 제약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수를 결정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5년 정도 제약사 매물을 찾던 중 경북 경산에 위치한 아남제약이 눈에 들어왔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아남제약은 결국 부도를 맞았고 2011년 경매로 인수했다. 20억 원가량의 인수 자금이 필요했다. 김 대표가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지만 자금이 모자랐다. 이번에도 그의 주변 약사들이 나머지 자금을 모아줬다. 투자자로 참여한 일부 약사들은 14년이 지난 현재까지 마더스제약의 주요 주주로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약사 인수에는 성공했지만 막상 사업을 하려니 힘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약국 체인 사업에 쓸 약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보유한 제약사를 인수했지만 약국에서 소모되는 물량만으로는 공장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른 제약사의 제품을 위탁생산(CMO)하기로 방향을 바꿨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들은 이미 제약사들이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제약사의 공장들이 위탁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대표는 제3의 길을 택했다. 남들이 생산하지 않는 이른바 ‘3D 의약품’ 생산에 집중하기로 한 것. 김 대표는 “공장의 캐파를 채우기 위해 다른 제약 공장들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약, 생산 과정이 너무 힘들거나 어려워 꺼리는 소위 ‘3D 의약품’을 찾아 만들기 시작했다”며 “냄새와 공장 오염 문제 등으로 생산하지 않으려고 하는 쑥 등 천연물을 원료로 하는 의약품 등을 생산하며 생산 물량을 점점 늘려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남제약이 원래 천연물 의약품을 생산하던 제약사였기 때문에 공장 직원들의 거부감도 크지 않았던 점이 다행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대표가 승부수를 띄웠다. 2011년 제약 사업에 진출한 지 약 10년 만인 2020년, 최첨단 설비를 갖춘 익산 제2공장 설립이었다. 남들이 꺼려하던 약 생산에서 남들도 만드는 약을 넘어 남들이 못 만드는 약 생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익산은 김 대표가 대학 시절 약학을 공부한 모교인 원광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여러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녔는데 익산시가 가장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다”는 게 그의 전언.
익산 제2공장은 익산 제3일반산업단지에 전용면적 9444㎡(2860평) 규모로 조성됐다. 정제·캡슐 등 고형제 제조 라인을 중심으로 유동층 건조기, 하이스피드 믹서, 이중층 타정기 등 생산 설비와 스마트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다. 2022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GMP) 인증도 받았다. 생산력은 기존 경산 제1공장의 약 3배에 이른다. 마더스제약의 생산력은 경산 공장에다 익산 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면서 회사 설립 초기 1억 400만 정에서 지난해에는 10배 이상인 10억 8400만 정으로 대폭 확대됐다.
마더스제약은 2011년 회사 설립 이후 초기 몇 년을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CMO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아 회사 설립 3년 만인 2014년 매출 106억 원으로 100억 원을 처음 돌파했고, 2015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31.2%에 달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올해 매출은 2450억 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더스제약의 주요 제품은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엠젯’과 골관절염 진통소염제 ‘레이본정’이다. 지난해 각각 147억 원, 96억 원어치가 팔린 효자 상품이다. 타사 제품 중에는 당뇨병 치료제 ‘테네글립정·엠서방정’을 115억 원가량 위탁생산했다. 마더스제약의 현재 매출 구조는 자사제품(ETC) 70%, 수탁 매출(CMO) 30%로 구성된다.
김 대표는 5년 전인 2020년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중장기 목표인 ‘비전 2030’을 수립했다. 그는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라며 “일단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안 될 일도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30년에는 현재 2000억 원 수준인 제약 매출을 5000억 원 가까이까지 늘리고 건강기능식품·화장품으로 나머지 매출을 올려 총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서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목표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더스제약을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 대표는 “한번 정한 원칙이나 정도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몰입하는 스타일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고 최선을 다하니 목표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 것도 없었다”고 담담히 전했다. 다만 “일에 대해서 두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안 된다고 생각하면 들어가지 않고, 들어간 일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서 되게 만드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고 있다. 담담하고 성실하게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와 가치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 열매가 열린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김 대표는 약국을 운영할 때 저녁 11시에 문을 닫으면 환자들을 잊을 수가 없어 처방전을 들고 인근 교회에 들러 조속한 쾌유를 빌며 기도하고 집으로 귀가하고는 했다. 그는 “지금도 약국을 운영할 때 환자를 대하던 초심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저희가 환자를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제약사도 약국도 약국 체인 사업도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더스제약이라는 이름도 이 같은 김 대표의 생각을 담아 지었다. 김 대표는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마더스(Mothers)’를 상호에 많이 쓰고 엄마의 역할을 양육(Education)과 치료(Care)라는 양 측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더라”며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표현처럼 엄마의 사랑, 엄마의 치료라는 내용을 담은 마더스는 동서양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마더스제약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신약을 연구개발(R&D)하고 있는 것도 김 대표가 갖고 있는 소명 의식의 연장선이다. 마더스제약은 국가 신약 개발 사업 과제로 건성 황반변성 치료제(MTS-DA), 통증 치료제(MTS-CP)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환자를 위한 일을 멈추면 안 되기 때문에 난치병 신약을 만드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1년 충남 보령 △1980년 북일고 졸업 △1984년 원광대 약학 학사 △1986년 원광대 약학대학원 약학 석사 △1996년 원광대 약학 박사 △1984년 감초약국 약국장 △1993년 베데스다 대표 △2000년 크레지오팜 대표 △2001년 리드팜 부사장 △2003년 마더스팜 대표 △2011년 마더스제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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