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기준금리를 언제, 어느 정도 내릴지는 가계부채·주택시장·외환시장 등을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과 맞물려 가계대출 증가 폭이 커지는 가운데 금리가 인하되면 대출 수요를 더 부추길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이날 열린 물가 안정 목표 운영 상황 점검 기자 설명회에서 “한은은 나름 경기 상황 등을 보고 금리를 결정하겠지만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해 기대심리를 증폭시키는 잘못을 범하면 안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금리가 계속 인하 추세에 있고 앞으로 몇 년간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여러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며 “이 기대를 처음에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급에 대한 불안이 있고 소위 ‘믿지 못하겠다’는 상황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공급안이 수도권 지역에서는 더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5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인하한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금리정책이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정도로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 새 정부와 공감대를 이루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은 수도권 인구 쏠림과 그로 인한 공급 불균형 문제가 주택 가격 과열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실효성 있는 공급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한은 조사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서울과 전국 간 집값 상승률 격차는 69.4%포인트로 주요 7개국 중 가장 컸다. 해당 기간 서울 집값은 112.3% 오른 반면 전국 평균은 42.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수도권 인구 과밀화와 지방 미분양 심화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정책과 관련해 이 총재는 “효율성 측면에서 보편 지원보다 어려운 자영업자나 영세 사업자에게 집중하는 선택적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2차 추경 규모가 20조 원일 경우를 가정하면 내년 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올린다는 분석도 함께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추경을 늘리는 것이 성장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고 물가에 미칠 영향은 적다”면서 “추경이 어디에 쓰이는지에 따라 승수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추경안에 따른 성장률 영향은 다음 달 금통위 때 설명하겠다”고 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발행 주도권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오히려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교환이 쉬워져 달러 수요가 늘고 외환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급결제 기능이 은행에서 비은행권으로 이동하게 되면 은행의 수익성과 사업구조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장기적인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가 자리를 잡는 대로 협의를 통해 정책 방향을 조율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코인과 연계된 카드사와 가맹점과의 지급·결제로 중간에 은행이 없어도 된다는 점을 겨냥한 셈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시중 통화량을 늘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에는 “어떤 형태로 발행이 되느냐에 따라 통화량에 주는 효과는 다를 수 있다”며 “준비 자산을 어떤 형태로 하느냐에 따라 통화량 변화를 안 줄 수도 있다”고 답했다.
통화량에 변화를 주지 않는 방식은 현재 한은이 시중은행들과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시험하고 있는 예금토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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