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4월 당시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특별한 문서화된 합의를 이끌어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은 통상적으로 비핵보유 동맹국이 적대 세력의 핵 공격으로 안보 위협에 처하지 않도록 미국의 핵 전략자산으로 보호하는 이른바 ‘핵우산(확장억제)’ 정책을 펼친다.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호주 뿐만 아니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등 30여 국에 달한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특별 형태로 미국의 핵우산 제공에 대한 문서화가 이뤄졌고 발표했다. 다른 동맹국에는 전례를 찾기 힘든 특별 조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핵우산의 취지는 미 동맹을 핵으로 공격하면 미국은 예외 없이 핵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략적 분명성’으로 핵 사용 결정을 사전에 억지하고 차단하는 의미가 있다. 이에 미국은 각 동맹이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과 시대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맞춤형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1953년 7월 NATO 회원국에 핵무기 배치를 약속했고, 이듬해 9월 이를 이행했다. 핵무기 배치량을 늘리고 운용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NATO는 1966년 핵공유 협의 기구인 ‘핵기획그룹(NPG)’을 창설했다. 그러나 핵공유, 핵우산에 대해 별도의 문건을 만들어 발표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1951년 9월 8일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근거해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핵우산을 공동성명에 넣거나 이와 관련한 별도의 문건을 만들어 발표하지는 않았다. 호주는 1990년대부터 미국과 핵우산 논의를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등처럼 NPG 같은 협의체를 만들거나 별도의 협의 문건을 공식 발표한 적은 없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올 ‘핵우산’ 관련 별도 문건은 다른 동맹에서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한반도 방위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번 핵우산 특별 문건이 동북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단안보 체제 구축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 공약이 ‘허언(虛言)’이 될 수 있다는 최근 실시한 워게임 보고서는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미 국방부 국방위협감축국(DTRA)과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이 진행한 후 공개된 ‘가디언 타이거(Guardian Tiger)Ⅰ·Ⅱ 도상연습(TTX)’ 보고서다.
미국 정부와 군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가한 두 차례의 도상연습에서 향후 5~10년 내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 가능한 두 개의 분쟁을 상정했다. 두 차례의 도상연습은 각각 북한의 서해 도발(가디언타이거Ⅰ)과 중국의 대만 침공(가디언타이거Ⅱ) 시나리오로 시작되는데, 두 연습 모두 북한의 전술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진다.
논란이 되는 것은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확전을 우려해 북한에 대한 핵 보복을 주저했다는 대목이다. 북한 정권 종말 작전도 성공을 낙관하지 못한 상태로 종결됐다.
가디언 타이거Ⅰ에선 북한의 서해 도발이 확전으로 이어지고 화학무기 공격에 이어 동해 상 아군 함정에 대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했다. 일본 열도를 관통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하는 전략 도발도 자행했다. 하지만 대응 방안을 놓고 이견이 표출된다.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는 핵과 비핵 방안 중 비핵에 중점을 둔 방안을 권고했고 국방부도 핵 보복보다 첨단정밀무기에 의한 정밀타격과 함께 북한과 중국에 “북한이 추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미국은 핵무기를 쓰거나 김정은 정권 종식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직 주한미군 참가자들만 핵·재래식통합 총공세 또는 평양 인근에 핵무기 공격을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대만 유사시 상황을 다룬 ‘가디언 타이거Ⅱ’ 보고서 역시 내용은 충격적이다. 가디언 타이거Ⅱ는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개시하는데 대만 강점 작전 초기 큰 피해를 입은 중국은 주한미군의 대만 증원을 차단하려고 서해에 군사작전금지구역을 설치하고 북한과의 군사협조센터를 운영한다. 위기가 고조하면서 북한이 미사일·드론으로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고 한미가 이에 보복한다.
그러자 북한은 전술핵으로 아 공군기지를 타격하고 괌 주변에 중거리미사일 4발을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인다. 이에 한미는 북한 정권 제거를 위한 공세작전에 합의하고 대규모 지상·공중 반격 작전을 벌여 평양 근처에 접근하지만 북한의 추가 핵 공격 가능성에 주춤한다. 그러는 사이 중국이 대만 공세를 강화할 기회를 잡으면서 대만 함락 우려로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두 차례의 도상연습에서 확인된 것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가 작동하지 않은 채 갈팡질팡했다는 것이다. 가디언 타이거Ⅰ·Ⅱ 모두에서 북한의 전술핵무기 사용에 대해 미국이 핵 보복을 검토했지만 핵 보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워게임이 종료했다.
눈 여겨볼 것은 워게임 보고서는 공교롭게도 미 국방부가 내놓을 새 국가방위전략(NDS) 작성이 한창인 가운데 공개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NDS는 중국의 지역 패권 저지를 최우선에 두고 동맹·우방의 ‘반(反)패권연합’ 구축부터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와 지휘체계 개편까지 포괄하는데 두 개의 전쟁 시나리오는 그 ‘선택과 집중’을 위한 중요한 검증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과 북한 정권의 핵 사용에 따른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 한국 측에 믿음을 줄 수 없는 의구심 등을 초래했다는 우려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워게임 교훈으로 북한의 어떠한 핵사용도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any use of a nuclear weapon will lead to the end of the North Korea regime)이라는 선언적 공약은 북한의 핵 능력이 더욱 고도화 하는 2030년엔 신뢰성을 갖지 못할 것으로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심지어 미국 지도부가 한반도나 대만 유사시 한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말 그대로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 조약의 효력이 한반도 방위에 한정된 것처럼 주장하지만 조약 제3조에는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 또는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만이 ‘공동 행동’ 발동 조건이 아닌 점이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따라 미국의 확장억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만큼 당장 핵무장을 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핵 잠재력이라도 확보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