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에 따른 출점 및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등의 제약을 받는 동안 규제를 비껴간 식자재 마트가 급성장하고 있다. 규모나 영향력 측면에서 대형마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도 법 테두리를 벗어난 덕에 연중무휴 24시간 대규모 매장을 운영하며 유통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자재 마트 매출은 지난 10년 사이 2~3배 이상 급증했다. 장보고식자재마트의 매출은 2014년 1818억 원에서 지난해 4503억 원으로 약 2.5배 몸집을 불렸고 세계로마트도 같은 기간 743억 원에서 1250억 원으로 매출이 약 1.7배 증가했다. 식자재왕마트를 운영하는 푸디스트는 2019년 4545억 원에서 지난해 8821억 원으로 5년 만에 매출이 2배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매출은 3조 3000억 원 이상 쪼그라들었다. 올해 3월 기업회생을 신청한 홈플러스는 10년 동안 2조 원 가까이 매출이 급감했고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2조 3000억 원 넘게 빠졌다.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만 매출 감소를 면했으나 좀처럼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불합리한 유통시장 구조가 이어지면서 업계에서는 유통법 개선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비슷한 형태의 유통 매장인데도 규제를 받는 곳과 받지 않는 곳이 나뉘면서 시장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전체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이면 대형마트로 분류해 규제를 적용하는데 식자재 마트는 해당 규제 기준에서 벗어나 있어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 가능하다. 표준 계약서 작성 의무도 없어 가격 결정 구조나 납품 조건 등에서 대형마트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대형마트와 SSM이 규제로 성장에 제약을 받는 동안 식자재 마트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자재 마트 업계에서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도 성행하고 있다. 실제 일부 식자재 마트는 약 4500㎡ 규모의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대형마트’로 분류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건물을 3개 동으로 나눠 소매점으로 등록해 버젓이 운영 중이다. 납품 계약서가 없어 단가 후려치기도 일상이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달 초 “자영업자들이 크게 어려워진 데는 유통 생태계를 교란하는 ‘잡식 공룡’인 식자재 마트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같은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정작 법 개정은 요원하다. 21대 국회에서 식자재 마트 규제 법안이 22건 발의됐고 22대 국회에서도 14건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심사가 진행된 안건은 1건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법이 환경 변화에 뒤지면서 형평성과 실효성을 모두 잃은 사이 식자재 마트가 유통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며 “면적 중심이 아닌 기능과 형태 중심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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