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향후 물가의 장기 추세를 상승으로 가정해 통화정책의 기본 틀(프레임워크)을 개편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은행의 대응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연준이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금리 인하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저성장 대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는 한국은행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15일(현지 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제2회 ‘토마스 라우바흐 콘퍼런스’에서 “2010년대보다 인플레이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고 공급망 충격이 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해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은 5년마다 통화정책의 틀이 되는 프레임워크 개편 작업을 한다. 가장 최근은 2020년이었다. 당시 저물가・저금리・저성장 환경을 반영해 물가 목표치(2%) 초과를 용인하는 ‘평균물가목표제(AIT)’를 채택했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 이후 찾아온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을 늦게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파월 의장이 높은 인플레이션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시사한 만큼 저물가·초저금리를 전제로 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물가 상승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방향의 통화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스탠스를 보인다면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0%대의 저성장 전망에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하는데 한미 간 금리 차가 더 벌어지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16일 발표한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4월 중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 자금은 17억 달러가 빠져나가 3개월 만에 순유출로 돌아섰다. 특히 주식 자금이 93억 3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2020년 3월 이후 5년여 만에 가장 큰 순유출 규모다.
어쨌든 시장은 한은이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관망 모드에도 경기 하강 국면에 소극적 대응만으로 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경기 상황을 고려해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준의 행보, 가계부채 부담 등을 감안할 때 한은도 급격한 금리 인하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완만한 인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선 이후 새 정부가 강도 높은 경기 부양책을 추진할 경우 인하 속도가 다소 빨라질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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