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해킹 사고로 가입자 대상 위약금을 일괄 면제할 경우 월 수백만 가입자가 이탈하고 연간 조(兆) 단위의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두 차례 청문회를 열며 위약금 면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의 존립이 걸린 사안인 만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현재 SK텔레콤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신규 가입 중단으로 가입자 유치 ‘대목’으로 꼽히는 스마트폰 신작 마케팅이 불가능하다. 롯데온, 지마켓 등 온라인 유통채널에서 SK텔레콤 소액결제를 임시 차단 조치했다. 이에 일선 대리점에서는 SK텔레콤이 시장 점유율 1위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고조되고 있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해킹 사고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약금 면제가 현실화할 경우) 한 달 기준 최대 500만 명까지 이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럴 경우 위약금과 매출까지 고려하면 3년간 7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위약금 면제 비용은 연간 2조 3000억 원 정도로 SK텔레콤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 1조 9820억 원과 맞먹는 만큼 회사의 실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 대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권 해석을 참조해 이사회·신뢰회복위원회와 상의해 위약금 면제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파장이 큰 부분이어서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도 “사업자에게 상당히 심각한 피해가 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으로서는 법적 검토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현행 법에 위약금 면제 같은 해킹 피해 보상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회사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경우 배임 소지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날 “피해자가 개인정보 유출과 피해 간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법에 이를 추정하는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위약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법적 문제와 이용자 형평성 문제를 같이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형평성 문제는 가입자마다 남은 위약금이 천차만별인 만큼 일괄 면제 시 보상에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위약금 면제는 그 자체로 막대한 재무적 부담일 뿐 아니라 대규모 가입자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이미 SK텔레콤 가입자들은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로 해킹 사고 후 전날까지 전례없는 규모인 26만 명이 다른 통신사로 옮겼다. 롯데온, 지마켓 등 e커머스 업체들이 SKT 소액 결제 차단 조치에 나섰다. 롯데온은 8일부터 고객 정보보호를 위해 휴대폰 소액 결제시 SKT 인증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마켓 역시 이날부터 SKT 소액 결제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이번 해킹 사태가 종료될 때까지 중단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은 계열사 통합ID 서비스에서 SKT와 SKT 알뜰폰 고객의 본인인증을 중단한 바 있다. 이에 가입자들의 불안감이 진화되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 신작 마케팅까지 막히면서 가입자 이탈이 심해질 우려도 생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이 이달 13일 공개될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25 엣지’의 유심(USIM) 신규 가입을 받을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앞서 유심 수급이 안정되기 전까지 가입자 모집을 중단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이어 7월 ‘갤럭시Z플립7’과 ‘갤럭시Z폴드7’, 3분기 SK텔레콤 전용 양자보안폰 ‘갤럭시퀀텀6’ 등도 잇달아 출시가 준비되고 있다. SK텔레콤이 해킹 사고 여파로 신제품 출시라는 통신업계 ‘대목’까지 놓치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신제품 마케팅 경쟁에서 밀릴수록 점유율에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점에서도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는 전날 회의를 열어 위약금 면제 관련 상황을 논의했다. 점주들은 위약금 면제가 이뤄질 경우 “부동의 1위인 SK텔레콤이 KT와 LG유플러스 밑으로 점유율이 하락할 수 있다” “무조건 업계 순위가 바뀔 것”이라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