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 대출을 이용하면 대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금리가 낮아진다. 은행 입장에서는 연체가 발생해도 지역신보에서 80~90% 안팎을 대신 물어주는(대위변제) 만큼 위험도가 크게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1~3등급 소상공인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연 5.49%의 금리가 적용되지만 지역신보의 보증부대출을 이용하면 4.25~4.47%로 떨어진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 1~3등급인 소상공인이 지역신보를 이용해 아낀 금융비용은 최소 949억 원으로 추산된다. 2020~2024년 5개년으로 기간을 넓히면 총 8634억 원의 이자를 아낀 셈이다.
반면 지난해 신용 8~10등급인 저신용 소상공인이 지역신보를 통해 아낀 금융비용은 고작 1억 9000만 원에 불과했다. 최근 5년치를 합쳐도 65억 원에 불과하다. 지역신보가 지난 5년간 고신용자(1~3등급)에게 제공한 금융비용 절감분(8634억 원)이 저신용자(65억 원)보다 133배 많은 것이다. 상호금융·저축은행을 포함한 제2금융권 대출까지 포함하면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간 금융비용 절감 혜택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자 절감 효과가 저신용자 쪽에서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쪽의 차이는 지나치게 크다는 분석이 많다. 신용등급 8~10등급인 저신용 차주에 적용된 지역신보 보증부대출 금리는 5.41~6.03%로 은행권(10.39%)보다 4.36~4.98%포인트 낮다.
금융계에서는 지역신보가 오히려 고신용자의 금융 부담을 덜어주는 소득 역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7일 “일반 시중은행이 해도 부담이 안 되는 금융을 정책기관이 대신 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행태”라며 “지금과 같은 정책금융기관의 행태가 지속된다면 힘든 자영업자는 계속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인 신용점수를 기준으로 봐도 지역신보의 고신용자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 개인 신용점수 900점 이상 고신용자에게 공급된 지역신보 신규 보증 공급액은 5조 8262억 원으로 전체의 50.6%에 달한다. 이 비중은 전년(46.2%)에 비해서도 4.4%포인트 확대됐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고신용자 선호 현상이 강해지는 배경으로 지역신보의 재무 악화를 꼽는다. 경기 악화에 지역신보가 대신 갚아줘야 할 빚이 급증하고 있어 처음부터 연체 가능성이 낮은 이들을 골라받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당시 과잉 공급한 대출이 경기 침체에 빠르게 부실화하고 있는 것이 한몫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국내은행의 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를 기준으로 한 원화대출 연체율은 0.58%로 6년 3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역신보가 부실화하면 연쇄적으로 신보재단중앙회도 건전성이 나빠진다. 신보재단중앙회는 각 지역신보가 공급한 금액의 일부를 재보증한다. 지난해 신보재단중앙회가 쌓은 재보증보전금은 1조 9598억 원에 달했는데 이 중 손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은 1조 5077억 원이나 됐다. 신보재단중앙회의 자료를 보면 지역신보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상명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상공인 경기가 열악한 상황에서 지역신보에서도 부실에 대한 염려가 많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평가와 심사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지역신보의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현재 지역신보의 보증공급 잔액은 42조 7000억 원이다. 같은 시점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325조 6000억 원)의 13% 수준이다. 10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하면 2.9배나 불어났다. 정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총 14조 2000억 원의 지역신보 신규 보증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년(11조 5032억 원)보다 23.4% 늘어난 규모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지역신보가 지금처럼 계속 커지면 지역신보 보증서만 보고 대출을 집행하는 시중은행의 관행 역시 굳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럴수록 채무자는 물론이고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역시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