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정부 쪼개기’ 방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국 정부들은 인공지능(AI) 확산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구조적 비효율 대신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8일 정일영 의원 주관으로 국회에서 ‘기재부 등 경제부처 개편 토론회’를 열고 정부 조직개편안을 논의했다. 6·3 대선을 앞두고 예산 편성권과 경제정책 수립 권한을 모두 갖는 기획재정부의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문가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기재부를 가리켜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재부 권한을 대폭 분산해 예산 기능을 따로 떼어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예산은 전형적인 ‘행정 자원’이기 때문에 국무조정 기능을 갖는 총리실이나 대통령실이 관할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예산 이외의 잔여 정책 기능은 ‘재정부’에서 통합 관리하게 된다.
하지만 ‘AI 정부’ 전환이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이 같은 기재부 축소 개편안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의 이날 전문가·관료 대상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72%가량이 ‘AI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 신설(42.4%)’ ‘공공·민간 협업 확대(30.3%)’를 정부 조직개편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행정부 조직개편의 본질은 몇몇 부처 권한을 옮기는 게 아니라 AI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기반 행정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은 이미 AI 정부 전환을 겨냥해 조직 재설계를 서두르고 있다. 싱가포르는 2020년 ‘스마트 네이션·디지털 정부청’을 신설해 모든 정부 부처의 디지털 전환을 총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역시 세계 최초로 ‘AI 전략실’을 도입해 각 부처별 AI 프로젝트를 통합 관리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AI센터(NCAI)’를 설립해 정부 AI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와 법제도 정비를 함께 추진하면서 정부 전체의 속도와 민첩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개별 부처 중심과 권한 배분 중심의 논쟁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AI 시대에는 데이터가 핵심 자산인데 우리는 여전히 예산권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만 논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 조직개편 논의에서 AI 정부 전환을 겨냥한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국가 전략을 총괄하고 기획하는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조직개편에서 우선순위가 중요한데 기재부 개편보다 전략을 짜는 부처가 더 시급해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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