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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석유∙가스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업체들은 ‘코로나 팬데믹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는데요.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파상공세로 하락하고 있는 국제유가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가격 인하를 공약했지만 이런 식의 급락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 에너지 업계가 직면한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을 시작한 한국에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 뿐”
지난달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미국 130개 석유∙가스 업체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CEO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는데요. “현재 확실한 것은 (에너지 시장에) 불확실성이 가득하다는 것”, “무역과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기업의 생산) 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40년 이상 에너지 업계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사업 지속성에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까지 매우 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 가운데 공통적인 걱정은 유가 하락입니다. 한 CEO는 “유가가 계속 떨어지면 코로나 팬데믹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감소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른 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에너지 업계 역시 코로나 팬데믹은 악몽과도 같은 기억일 것입니다. 전 세계 경제 활동이 그야말로 일시 정지 상태에 빠지면서 에너지 수요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2020년 4월에는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한 때 -37달러까지 떨어지는, 한 마디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기도 했죠. 지금 미국 에너지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의 정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美 알래스카 LNG 참여에 미칠 영향은
실제로 국제유가는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와 ‘90일 유예’로 이어지는 이달 2일부터 11일 사이 그야말로 ‘자유 낙하’를 했는데요. WTI는 2일 배럴 당 71.7달러에서 11일 현재 61.5달러로 뚝 떨어졌습니다. 물론 배럴 당 평균 20~30달러를 기록했던 팬데믹 때 수준으로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아 보이지만, 에너지 업계 CEO들의 우려 대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불확실하다는 것이 확실한’ 상황입니다.
가격은 떨어지는데, 관세로 비용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올 2월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에 25% 관세가 부과되는 만큼 석유∙가스 시추 장비나 송유관 등 생산 비용은 높아지기 때문이죠.
정리하면, 미국 화석연료 업계는 증산이 아니라 오히려 감산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 업체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미국의 원유 시추공 수는 11일 현재 480개로 일주일 전 489개보다 9개 줄었는데, 1년 같은 기간(506개)와 비교하면 26개나 감소한 것입니다.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가스 시추 생산 확대)’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일 메이저인 미국 셰브런도 최근 내년까지 약 8000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전 세계 임직원의 20%에 해당하는 대규모 정리 해고에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석유·가스 생산 활동의 위축은 대형 프로젝트의 진행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겠죠. 미국이 관세 협상 조건으로 한국과 일본 등에 우리 돈 60조 원대 대형 프로젝트인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를 압박하는 가운데, 자국 업계조차 석유∙가스 생산 확대를 꺼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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