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공짜 안보를 줄 수 없다”며 막대한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고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이어진 평화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복지 제도를 구축해왔지만 이제는 ‘버터(복지예산)’를 선택할 것이냐, ‘총(국방비)’을 선택할 것이냐를 놓고 기로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대륙의 안보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버터를 총과 맞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국제전략연구소가 발간한 ‘밀리터리 밸런스 2025년판’에 따르면, 171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2024년 세계 국방비는 2조 4600억 달러(3612조 5000억 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2조 2400억 달러(3293조 200억 원)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 약 320조 원 이상이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도 증가했다. 2022년 1.59%던 수치는 2023년 1.80%, 2024년에는 1.94%로 상승 추이를 보였다.
이 같은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이 10년 연속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1인당 군비 지출액도 306달러(약 45만 원)로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군비 지출 상위 5개국은 미국(9160억 달러), 중국(2960억 달러), 러시아·인도(836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758억 달러)다. 한국의 군비 지출은 479억 달러로 순위는 10위로 수준이다.
그렇다면 동북아시아 군사적 요충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4강과 우리 국군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과 국민 1인당 국방예산 등의 흐름은 어떨까.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정희원·최서준·손윤진·변솔휘 연구위원이 최근 이 같은 국방예산 추이를 분석한한 ‘국방예산 분석・평가 및 전망(2024)’ 보고서를 살펴봤다.
군 규모를 고려한 국방예산 규모를 살펴볼 때, 미국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규모를 계산하면 2023년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에 비해 약 1.60배인 69만 3613달러(10억 1800만 원)다. 유사시에는 동원되는 예비군까지 고려하면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의 약 1.58배인 42만 9093달러(6억 3000만 원)다. 5개국 가운데 1인당 국방예산이 가장 높다. 2023년 기준 미국 국민 1인당 국방예산 규모도 8만 1632달러(1억 1900만 원)으로 역시 5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2위인 일본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규모를 계산하면 2023년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에 비해 3% 늘어난 19만 6589달러(2억 8700만 원)다. 유사시에는 동원되는 예비군까지 고려하면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의 약 3% 증가한 16만 309달러(2억 3400만 원)다.
미국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20년까지 1만 달러 수준의 소폭 증가를 보였다가 이후 오히려 감소하며 19만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있고, 자위대는 명칭으로 방어 역할 수행만 하고 있어 군비를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3년 기준 일본 국민 1인당 국방예산 규모는 3만 3806달러(4900만 원)으로 5개국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1인당 국방예산은 더 많았다.
중국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규모를 계산하면 2023년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에 비해 약 1.90배인 10만 9529달러(1억 6000만 원)로 3위를 차지했다. 유사시에는 동원되는 예비군까지 고려하면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의 약 1.80배인 8만 7580달러(1억 2800만 원)다. 2023년 기준 중국 국민 1인당 국방예산 규모는 1만 2514달러(1831만 원)으로, 장병 1인당 국방예산 순위 보다 뒤처지는 5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 이는 5개국 가운데 전체 인구가 가장 많고 국민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작은 영향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규모를 계산하면 2023년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에 비해 약 1.70배인 8만 7509달러(1억 2800만 원)다. 유사시에는 동원되는 예비군까지 고려하면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의 약 1.80배인 1만 2154달러(1700만 원)다. 5개국 가운데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이 가장 낮았다. 이는 유사시를 대비한 예비군 병력이 2023년 기준 300만명 인데 현역은 50만명 수준으로 예비군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최상위 수준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3년 기준 한국 국민 1인당 국방예산 규모는 3만 3192달러(4800만 원)으로 일본과 100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비슷한 규모로 5개국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러시아의 경우 장병 1인당 국방예산 규모를 계산하면 2023년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6만 8006달러(9900만 원)다. 5개국 가운데 꼴찌다. 특히 2014년에 비해 약 0.8배가 줄었는데, 5개국 가운데 유일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나마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감소세를 기록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계기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유사시에는 동원되는 예비군까지 고려하면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2014년의 약 1.20배인 2만 8772달러(4200만 원)다. 규모로는 증가한 모습이지만 했지만 현역 장병 1인당 국방예산 흐름처럼 감소세를 기록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계기로 빠르게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현역+예비군 장병 1인당 국방예산은 역시나 5개국 꼴찌다. 2023년 기준 러시아 국민 1인당 국방예산 규모는 1만 3648달러(1900만 원으로 5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꼴찌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절대적인 규모에서 미국과 중국의 압도적으로 앞서지만, GDP 대비 비중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일본, 러시아는 2014년 대비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미국과 중국은 감소세를 기록했다. 또 절대적인 규모에서 비등한 수준의 국방예산을 가진 러시아, 일본, 한국의 국민 1인당 국방예산은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 보다 현저히 높은 수치를 보여 인구 규모 대비 국방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대목은 장병 규모에 따른 국방재원 규모를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 특히 일본의 상당한 차이를 보여 유사시 동원되는 예비군의 규모까지 고려할 때 장병 1인당 전투력 발휘 여건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전시에 투입되는 재원을 상당히 증가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한국의 경우 전시 예산의 편성・집행이 이뤄지기 이전 단계에서 예비군 규모가 포함된 장병 규모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 장병 1인당 전투력 발휘 여건은 크게 악화해 평시의 약 1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예비군의 상대적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평시와 전시 간 예산 증가가 크지 않더라도 장병 1인 전투력 발휘 여건에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