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미술사를 수놓는 역사적 작품부터 친근한 소재로 대중성을 한껏 높인 작품까지. 현대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 등 거장들의 작품 44점을 한 자리에 모아 현대미술의 국제적 흐름을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돕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는 ‘도넛 작가’로 불리는 김재용 작가가 도기로 빚은 형형색색의 도넛 작품들로 일상 속 예술을 제안한다. 두 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예술에 대중이 편안히 다가갈 기회를 제공한다.
로댕부터 임민욱까지…3년 만에 돌아온 리움 소장품전
리움미술관 전시실 입구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2미터 넘는 키에 뼈대만 남은 듯한 앙상한 여인의 모습이다. 가만히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이 작품은 스위스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상 ‘거대한 여인 Ⅲ(1960)’.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14세기 영국·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시민 영웅 6명을 기리는 ‘칼레의 시민’이 눈에 들어온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던 ‘플라토 미술관’에 놓여있던 로댕의 이 걸작은 2016년 미술관이 문을 닫으며 수납됐지만 이번 전시로 9년 만에 관람객을 다시 만나게 됐다.
로댕의 작품 옆으로는 신비로운 색의 배치로 깊은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마크 로스코의 ‘무제(1968)’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장욱진의 1964년작 ‘무제’가 나란히 걸렸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맞아 3년 만에 개최되는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을 유명한 순이나 시대 혹은 주제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작품 간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다층적 해석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관람객들이 미술사적 지식이나 주입식 읽기에서 벗어나 감각적 경험과 새로운 해석을 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총 44점의 작품 중 27점이 최초 공개 소장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솔 르윗, 리차드 디콘, 칼 안드레 등 거장들의 주요 작품이 소장 이후 최초 공개되며 루이즈 네벨슨, 한네 다보벤, 정서영, 임민욱 등 새롭게 소장한 작품이 더해져 리움 컬렉션의 확장된 예술적 깊이와 넓이를 드러낸다. 전시장인 M2의 각 큐브를 독립된 전시 공간으로 분리해 이우환과 김종영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특별 코너를 구성하는 등 새로운 공간적 시도도 더했다. 전시 종료 기간은 미정.
색색의 도넛들이 말하는 꿈과 희망과 기쁨
학고재에 전시된 김재용 작가의 형형색색 도넛들을 보고 서울 강남 모처의 유명 도넛 매장이 떠올랐다면 당신은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다. 해당 매장에는 작가의 작품이 실제로 전시돼 있다.
도넛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선택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며 ‘도넛 작가’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 작가는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의 심리적 부담을 단숨에 떨쳐줄 만한 쉽고 재밌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실제 흙으로 빚어낸 동그란 도넛 위에 다채로운 컬러의 물감과 반짝이는 크리스탈로 올린 스프링클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의 대표작 ‘도넛 페인팅 시리즈’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작가는 “달콤한 음식을 보며 인생도 달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이 달콤함을 벽에 걸어두고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품 구상 당시를 떠올렸다.
‘달콤한 기쁨’을 주기 위해 출발한 작가의 도넛은 꿈과 목표, 욕망과 희망으로 의미를 확장하는 중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이자 전시 제목인 ‘런 도넛 런(2024)’은 팬데믹 이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달려나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어딘가로 뛰어가는 도넛을 통해 유쾌하게 표현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도넛 조각인 ‘수고했어!’는 마치 트로피처럼 빛나며 현대인의 목표를 향한 욕망과 성취를 비춘다. 4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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